물거품은 숨결에서 태어나 접촉면을 만들고 다시 사라진다: 보는 일이라는 수조가 회화 작업에서 일렁일 때
물거품은 숨결에서 태어나 접촉면을 만들고 다시 사라진다, 잔잔하게. 하지만 바닷속에서 하나가 되는—일체되는, 즉 한 몸이 되는 것과 달리, 김소정의 그림 앞에서 우리는 두 눈으로 작품을 본다. 시각이 받아들이는 것은 온몸을 둘러싸는 감각보다 가만히 있다가 어느 순간 자꾸만 눈에 밟히는 것들이다. 그것은 시각에서 출발하되, 시각으로 머물지 않는 촉각성이다. 길을 걷다가 수조에 끌린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하되, 그 일화에 머물지 않는 촉각성이 김소정의 회화에서 보는 사람의 시선을 끈다—끌고 가로막는다는 두 가지 의미로. 《일렁이는 수조》는 회화 작업으로 구성된 김소정의 개인전이다. 수조가 일렁일 때, 우리는 그 수조를 수조로 인식하고 보고 있을까? 오히려 그 안에 보이는 것들에 관심이 잘 가고 수조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거기에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묘한 말이다. ‘파도’나 ‘물결’이 아닌, ‘수조가 ‘일렁이다’라는 표현은 무슨 뜻일까? 여기서—이 말에서, 수조 안에서, 김소정의 회화 작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김소정의 작품 앞에서 회화는 보는 사람의 시선을 끈다=시선이 끌린다는 것은 곧 시선을 끊는=가로막는 것이다. 바닷속으로 들어가 헤엄치는 감각과는 다르게, 김소정의 회화는 마치 평면에 달라붙듯이 형태가 보인다. 앞에 보이는 형태 뒤에는 또 다른 형태, 어쩌면 형태가 되어가는 듯한 것들이 보인다. 그의 작업에서 형태와 형태가 되어가는 것들은 화면 안에 공간감을 만드는데 그것은 원근법과도 다를 뿐만 아니라 해방감을 안겨주는 바닷속과도 다르다. 시야에 무언가가 달라붙을 때, 그것은 오히려 시야의 접촉면을 부각시킨다. 작가 본인이 ‘레이어’라는 단어로 작품 설명을 할 때, 그것은 시선을 (두 가지 의미로) 끄는 형상들이 제각기 다른 면을 소지하고 화면 속 공간감을 어지럽히는 결과를 가리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보는 사람의 시야에 물거품이 일듯 들어와 시선의 공간적 침투를 막는 시각적인 장 안에서 생성되고 사라지는 역동성이 김소정의 회화에서 촉각성을 담는다. 우리는 《일렁이는 수조》라는 제목에 걸맞게, 마치 수조라는 틀지어진 공간에서 본, 유리면과 거기에 맺히고 비친, 달라붙은 형상을 수조 너머, (또는) 수조에서 넘어오는 것처럼 보듯이 회화에서 시선을 끄는=끌고 끔으로써 촉각성을 수용하게 된다.
《일렁이는 수조》는 보는 것에 관한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시각을 건드린다. 수조라는 틀 안에서 보이는 것들, 그것은 바다에서 파도와 물결이 일고 흩어지는 반복 생성과 동일하지 않다. 설령 수조 안에 물거품이 일고 사라지는 것을 본다고 해서 우리는 여전히 수조 앞에 서 있다. 회화 작업을 보는 감각은 알갱이로 흩어져 사라지는 것과 다르게 캔버스라는 평면에 여전히 있는 것 안에서 이뤄지는데, 그것은 시각에 머물면서도 촉각성을 동반한다—그러고 다시, 시각으로 돌아온다. 작가가 길을 지나가다 수조를 보고 느낀 감각, 촉각성을 담은 회화는 작업 과정에서 실제로 물감이 흐르고, 그것을 만지면서 위아래로 이동하여 화면 전체를 움직이는 감각을 담는다. 여기서 움직임의 감각은 작가의 행위, 수조 안에 있는 생명체, 심지어 시야를 주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감상자의 움직임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지난 개인전 《Temporary Shelter》(2021)에서 보여준 <숨, 터>(2021)나 <터의 표면>(2021)에서 작가는 새 둥지에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의 조합을 목격했다. 이 조합은 첫 개인전 《CAPTURE - PLAY》(2019)에서 선보여진, 의도치 않게 나온 형상을 윤곽 짓는 작업 과정과 사실상 이어져 있다. 유리에 접촉한 빨판, 터빈이 돌아가면서 규칙적으로 뿜어내는 거품, 서리가 껴서 어렴풋이 보이는 하늘색 바닥—이와 같은 수조의 모습을 (단순히 시각적으로 모방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내적으로’ 공유한 작업은, 그간 작가의 작품에서 나타난 인위/인공적인 것과 우발/자연스러운 것이 만난 접촉면에서 출발하여 작품과 보는 사람의 시각장 안으로 촉각성을 끌어들인다.
작품 화면의 납작함은 공간감을 두께, 그 레이어의 겹침에서 유래하는데, 그것은 보는 일이라는 틀을 일렁이게 한다. ‘일렁이는 수조’라는 말은 시각장을 (말 그대로) 건드리는데, 한 형상에 시선이 끌렸다가 그 너머/뒤의 공간에 시선이 가지 않을 정도로 공간감을 잃어버린 다음, 화면에 돌아온다. 김소정의 회화는 캔버스와 보는 사람 둘 다의 시각장이라는 틀을 촉각성으로써 계속적으로 건드린다. 보는 일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일들은 그려진 형상이나 물감 자체의 촉각성에 단순히 귀결되는 대신, 시각장에서 발생하고 사라지는 촉각성을 물거품처럼 내뿜는다. 그런 의미에서 숨결이란 작품 화면에서, 보는 일과 더불어 시작하는 것이다.
글_콘노 유키
· 비평: 콘노 유키
· 디자인: 원정인
· 주최 및 주관: 옥상팩토리
물거품은 숨결에서 태어나 접촉면을 만들고 다시 사라진다, 잔잔하게. 하지만 바닷속에서 하나가 되는—일체되는, 즉 한 몸이 되는 것과 달리, 김소정의 그림 앞에서 우리는 두 눈으로 작품을 본다. 시각이 받아들이는 것은 온몸을 둘러싸는 감각보다 가만히 있다가 어느 순간 자꾸만 눈에 밟히는 것들이다. 그것은 시각에서 출발하되, 시각으로 머물지 않는 촉각성이다. 길을 걷다가 수조에 끌린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하되, 그 일화에 머물지 않는 촉각성이 김소정의 회화에서 보는 사람의 시선을 끈다—끌고 가로막는다는 두 가지 의미로. 《일렁이는 수조》는 회화 작업으로 구성된 김소정의 개인전이다. 수조가 일렁일 때, 우리는 그 수조를 수조로 인식하고 보고 있을까? 오히려 그 안에 보이는 것들에 관심이 잘 가고 수조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거기에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묘한 말이다. ‘파도’나 ‘물결’이 아닌, ‘수조가 ‘일렁이다’라는 표현은 무슨 뜻일까? 여기서—이 말에서, 수조 안에서, 김소정의 회화 작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김소정의 작품 앞에서 회화는 보는 사람의 시선을 끈다=시선이 끌린다는 것은 곧 시선을 끊는=가로막는 것이다. 바닷속으로 들어가 헤엄치는 감각과는 다르게, 김소정의 회화는 마치 평면에 달라붙듯이 형태가 보인다. 앞에 보이는 형태 뒤에는 또 다른 형태, 어쩌면 형태가 되어가는 듯한 것들이 보인다. 그의 작업에서 형태와 형태가 되어가는 것들은 화면 안에 공간감을 만드는데 그것은 원근법과도 다를 뿐만 아니라 해방감을 안겨주는 바닷속과도 다르다. 시야에 무언가가 달라붙을 때, 그것은 오히려 시야의 접촉면을 부각시킨다. 작가 본인이 ‘레이어’라는 단어로 작품 설명을 할 때, 그것은 시선을 (두 가지 의미로) 끄는 형상들이 제각기 다른 면을 소지하고 화면 속 공간감을 어지럽히는 결과를 가리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보는 사람의 시야에 물거품이 일듯 들어와 시선의 공간적 침투를 막는 시각적인 장 안에서 생성되고 사라지는 역동성이 김소정의 회화에서 촉각성을 담는다. 우리는 《일렁이는 수조》라는 제목에 걸맞게, 마치 수조라는 틀지어진 공간에서 본, 유리면과 거기에 맺히고 비친, 달라붙은 형상을 수조 너머, (또는) 수조에서 넘어오는 것처럼 보듯이 회화에서 시선을 끄는=끌고 끔으로써 촉각성을 수용하게 된다.
《일렁이는 수조》는 보는 것에 관한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시각을 건드린다. 수조라는 틀 안에서 보이는 것들, 그것은 바다에서 파도와 물결이 일고 흩어지는 반복 생성과 동일하지 않다. 설령 수조 안에 물거품이 일고 사라지는 것을 본다고 해서 우리는 여전히 수조 앞에 서 있다. 회화 작업을 보는 감각은 알갱이로 흩어져 사라지는 것과 다르게 캔버스라는 평면에 여전히 있는 것 안에서 이뤄지는데, 그것은 시각에 머물면서도 촉각성을 동반한다—그러고 다시, 시각으로 돌아온다. 작가가 길을 지나가다 수조를 보고 느낀 감각, 촉각성을 담은 회화는 작업 과정에서 실제로 물감이 흐르고, 그것을 만지면서 위아래로 이동하여 화면 전체를 움직이는 감각을 담는다. 여기서 움직임의 감각은 작가의 행위, 수조 안에 있는 생명체, 심지어 시야를 주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감상자의 움직임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지난 개인전 《Temporary Shelter》(2021)에서 보여준 <숨, 터>(2021)나 <터의 표면>(2021)에서 작가는 새 둥지에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의 조합을 목격했다. 이 조합은 첫 개인전 《CAPTURE - PLAY》(2019)에서 선보여진, 의도치 않게 나온 형상을 윤곽 짓는 작업 과정과 사실상 이어져 있다. 유리에 접촉한 빨판, 터빈이 돌아가면서 규칙적으로 뿜어내는 거품, 서리가 껴서 어렴풋이 보이는 하늘색 바닥—이와 같은 수조의 모습을 (단순히 시각적으로 모방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내적으로’ 공유한 작업은, 그간 작가의 작품에서 나타난 인위/인공적인 것과 우발/자연스러운 것이 만난 접촉면에서 출발하여 작품과 보는 사람의 시각장 안으로 촉각성을 끌어들인다.
작품 화면의 납작함은 공간감을 두께, 그 레이어의 겹침에서 유래하는데, 그것은 보는 일이라는 틀을 일렁이게 한다. ‘일렁이는 수조’라는 말은 시각장을 (말 그대로) 건드리는데, 한 형상에 시선이 끌렸다가 그 너머/뒤의 공간에 시선이 가지 않을 정도로 공간감을 잃어버린 다음, 화면에 돌아온다. 김소정의 회화는 캔버스와 보는 사람 둘 다의 시각장이라는 틀을 촉각성으로써 계속적으로 건드린다. 보는 일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일들은 그려진 형상이나 물감 자체의 촉각성에 단순히 귀결되는 대신, 시각장에서 발생하고 사라지는 촉각성을 물거품처럼 내뿜는다. 그런 의미에서 숨결이란 작품 화면에서, 보는 일과 더불어 시작하는 것이다.
글_콘노 유키
· 비평: 콘노 유키
· 디자인: 원정인
· 주최 및 주관: 옥상팩토리
작가 | 김소정 |
전시장 | 옥상팩토리 (Oksangfactory, オクサンファクトリー) |
주소 | 05855 서울특별시 송파구 법원로 4길 5 송파법조타운푸르지오시티 지하1층 B113호 |
오시는 길 | 지하철 7호선 문정역 4번출구에서 도보 10분 |
기간 | 2023.07.16(일) - 08.13(일) |
관람시간 | 13:00 - 19:00 / 13:00 - 21:00 (목요일) 마감 1시간 전 입장마감합니다. 입장료 3,000원 |
휴일 | 화요일, 수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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