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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두운 숲 속을 걷고 있지만 별들은 흔들리지 않지

d/p

2023.06.27(화) - 07.29(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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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추상은 구체적이고 유일한 이야기로만 전달된다. 나는 이준아의 그림을 오랫동안 지켜봐왔다. 십여 년 전 이준아는 ‘우연’을 작업의 주제 삼아 주사위 던지듯 우연과 확률에 기대어 자신의 화면을 채우는 일에 몰두했었다. 자신의 경험, 학습, 판단이 그림과 별개의 것으로 작동되도록 복잡한 규칙을 만들어 적용하곤 했다. 나에게 이준아의 그림은 꽤 어려운 것이었는데, 그 이유가 작가의 신체(경험하고 학습하고 판단하는 신체)와 그림의 신체(덩어리와 에너지) 사이에 임의적으로 끊긴 ‘공백’ 때문이었음을 얼마 전 알게 되었다. 작가는 그 공백이 자신의 아버지였음을 작가노트에서 고백한다.

이준아의 아버지는 80년대 학생 운동을 시작으로 민주화 운동에 몸을 바친 인물이다. 글자 그대로 몸을 바친 그는 옥살이와 고문으로 지난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정신질환을 앓았다. 수십 년간의 병상에서도 그는 현존하는 모든 세속 종교와 진리를 탐독하며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내밀하게 쌓아온 그의 철학이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진 않았다. 해독되지 않는 상징과 기호들만 노트에 남겨졌다.
그를 설명하는 몇 줄의 문장을 넘어 그의 삶과 가족, 딸과의 관계는 그 누구의 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구체적이고 유일했을 것이다. 이준아는 자신이 그려온 추상이 아버지가 지어온 추상과 같은 것이었음을, 아버지의 정신질환의 일환으로 여겨 거부해오던 아버지의 철학이 바로 작가 자신의 추상이었음을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비로소 목도하게 되었고 그 이후의 작업들로 이번 전시를 꾸렸다.

세폭화로 구성된 다섯 점의 신작은 이준아가 2015년 경부터 진행해 오던 ‘Random Studies’ 시리즈와 2020년 이후 심화하고 있는 ‘Fractal Studies’ 시리즈의 방식을 이은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 우연과 확률에 기대 구성된 화면에는 아버지 노트에서 추출한 상징과 기호들이 포함되었다. 나에게 가늠하기 어려웠던 작가 자신과 우연의 전략 사이의 공백은 빈칸이 아닌 추상을 자아내는 샘물과 같은 구체적인 공간으로 드러난다. 아버지 철학의 중핵으로 정립된 ‘사랑’의 상징은 무한히 확장하는 기하학적 그리드와 얽혀 영원과 무한으로 펼쳐진다.

누군가의 아주 사적인 이야기는 우리의 서로 다르고, 유일하고, 구체적인 사건들이 뒤엉킨 세계의 모양새를 볼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추상의 빛으로 반짝일 수 있지 않을까. 수 광년 전 터진 별의 빛은 우리의 지극히 어두운 숲을 향해 여전히 오고 있다.

이민지 (d/p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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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이민지
비평 텍스트: 홍태림
그래픽 디자인: 불도저
촬영: 이동웅
작가이준아
전시장d/p (디피, ディーピー)
주소
03140
서울시 종로구 삼일대로 428, 낙원악기상가 417호
오시는 길지하철 1, 3, 5호선 종로3가역 5번출구 이용, 도보 3분
기간2023.06.27(화) - 07.29(토)
관람시간11:00 - 18:00
휴일월요일, 화요일, 공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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