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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선의 대화

옥상팩토리

2026.05.13(수) - 24(일, 공휴일)

이 이벤트는은 휴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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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각선의 대화
작가: 배규무, 유수진
주최 및 주관: 옥상팩토리
전시 기간: 2026년 5월 13일(수) ~ 5월 24일(일)
운영: 수 13:00~21:00, 목-토 13:00~19:00 (마감 1시간 전 입장마감)
휴관: 일, 월, 화
입장료: 무료
관명: 옥상팩토리 @oksangfactory
지역: 서울시 송파구 문정동
교통: 문정역 3호선
전시 정보 URL: https://blog.naver.com/oksangfactory/224271586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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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팩토리는 2026년 기획공모전 《대각선의 대화》를 5월 13일(수)부터 5월 24일(일)까지 옥상팩토리에서 개최한다.

옥상팩토리 기획공모전은 예술 현장에 진입할 인프라가 부족한 신진 작가에게 개인전과 단체전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2021년부터 매년 공개 모집을 통해 참여 작가를 선정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총 20번의 전시를 진행하였다. 이번에 열리는 기획공모전은 배규무와 유수진의 이인전 《대각선의 대화》다.

《대각선의 대화》는 상이한 작업 방식을 가진 두 작가의 작업을 교차해 사유의 확장과 시각적 실험을 보여주는 전시다. 이번 전시를 통해 두 작가는 개개인이 완전히 동화되지 않고도 갈등과 차이를 지닌 타자로서 공동(共同)을 이룰 가능성을 모색한다. 전시장에서 교차 형태로 배치되는 두 작가의 작업은 이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배규무는 생존을 위해 타자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혼종적·개방적 존재로서의 개인과 그 신체를 탐구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업의 비정형적 틀과 형상은 생존 법칙에 종속된 동시에 타자와의 관계를 전제하는 유기체의 특성을 보여준다.

유수진은 일상에서 쉽게 흘려보낼 수 있는 이미지를 수집하고 회화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작가 개인에게서 출발한 작품 속 풍경과 사물은 회화 특유의 붓질을 거쳐 추상화되면서 타자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열린 매개체로 변모한다.

이번 전시는 두 작가의 작업이 지닌 특색과 차이를 무화하지 않으면서도 공존할 가능성을 모색하는 전시가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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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서문
「불수의적 연결들」 글: 이주환

위기 국면에는 동질성이 흔들리고 집단적인 규범 자체가 시험대에 오른다. 사회를 안정성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의 공동체로 복귀하자는 상투적인 주장은 지금도 무성하다. 마치 복원 가능한 원초적 상태나 순수한 통합을 이루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처럼 '우리'는 선언된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공동체는 흔히 근대 사회의 폭력과 비인간성을 극복하기 위한 낭만적 대안으로 여겨진다. 차이들이 나란히 존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유토피아적 입장은 공동체의 이중적 속성을 단순화하거나 무시했다. 사회의 조화와 동 일성의 (재)생산은 폭력과 이질성으로부터 떨어질 수 없다. 공동체는 안과 밖을 가르고 규범화하는 메커니즘 아래 얼마간 유지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연스레 주어지지 않을 때 함께함에 대한 의문을 더 끌고 나아갈 수 있는 방향성이란 무엇일까? 돌아갈 수 있는 기원을 상정하지 않고, 이웃하지 않는 두 지점 사이를 잇는 서로 다른 가능성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함께함에 대한 단순한 낙관은 더 이상 나아갈 전망을 제공해주지 못한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두 가지 측면을 아울러 사고해야 한다[1]. 먼저 우리를 정초하는 토대인 상상에 눈을 먼저 돌려보자. 우리는—스스로를 독특한 집단으로 구축하는 요소인—외적 경계 설정만 아니라 상상으로도 구성된다. 우리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실천 속에서 체현되는 공통 특성(들)에 대한 관념은 필수적이다. 즉, 개별적 상상과 집단의 관념을 생성하고 지속하는 실천과 발화 안에서 우리는 가까스로 존립한다. 다른 한편, 우리는 주체가 되기 이전에 함께 있음을 부여받기도 한다. 단수성은 복수성과 불가분하며, 함께 있음은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 독립적인 주체의 대립항으로 가정되는 타자의 구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자기 완결성이 없는 주체에게 연결은 곧 삶의 기본 조건이다. 이떄, 연결은 폐쇄적 회로보다는 마주치고 겹쳐지면서, 끊임없는 자기 초월의 과정으로 일어난다. 투사와 동일시가 항상 실패하기 때문에, 그리고 열린 체계 내에서 상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불순물 없는 우리는 허구적이다. 더욱이 갈등과 차이가 우리 사이에 내재되어 있다는 점은 우리가 영원히 완성될 수 없음을 알려 준다. 우리는 매번 파괴되고 (재)형성된다.

현재의 상황은 통약 가능성을 공유하는 집단으로 회귀하려는 모든 맹목적 견해와 단절하거나, 적어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명령한다. 우리는 개인과 집단,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 중 어느 하나로 기울어지려는 유혹을 뿌리치면서, 1인칭 복수형의 개념과 양태, 형상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렌즈를 세공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 배규무와 유수진의 우연한 만남에서 이어진 《대각선의 대화》는 교차하는 선들이 비스듬히 구성하는 세계를 탐사한다. 양립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두 언어는, 타자라는 축을 바탕으로 상동성 을 보이며 서로의 공간을 조직한다.

유수진은 주로 자신을 거치거나 겪는 이미지를 그린다. 그런 이미지는, 이를테면 우연히 찍힌 사진이나 메모, 인터넷 화면 캡처와 같이 자신의 곁을 맴도는 보통 이하의 것이다. 어떤 물건이나 풍경의 선호가 한 개인의 반복된 삶의 축적에서 형성된 경향이자 의도적 선택이라고 한다면, 유수진의 이미지는 특정 의도나 선택이 아닌 일종의 비-취향, 어떤 계열이나 분류에 걸치지 않고 빗나가는 이미지를 제시한다. 유수진은 작업 과정에서 자신이 명확히 알지 못하는 어떤 장소를 매번 방문한다. 유수진의 회화는 자신을 구축했으나 자신에게 여전히 불투명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기억의 지층이 여러 차례 반복되는 재배열과 재전사(re-transcription)로 덧씌워지는 것처럼, 평범한 이미지는 유수진의 반복적인 환기와 재구상을 통해 굴절된다. 유수진의 역동적인 제스처는 사진의 데이터를 그대로 옮기는 대신, 엷은 레이어 위에서 서로 주장하는 빛들이 덜 섞인 채 움직이도록 한다.

동시에, 유수진의 회화는 산재하는 이미지로 작성된 병우편이다. 수취인 없이 바다 위를 떠다니다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도착하는 편지처럼, 의미의 부스러기는 유수진을 거쳐 우송된다. 작가는 편지의 작 성자로부터 물러나고, 미연을 향해 미리 앞당겨 쓰여진 편지가 익명에게 전달된다. 각각의 화면은 유수 진이라는 개인의 고유한 관점을 그리기보다 타자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매개체로 열려 있다. 유수진은 타자에게 의미를 부여하도록 그 권한을 위임하고, 작품의 의미를 한정하는 작가의 위치로부터 거듭 물러난다. 뻔하고 범속한 것에 질문하고 의미를 부여하도록 만드는 것은 일상적 삶에 갈라진 틈을 만들고, 놀라움과 예측할 수 없는 효과를 야기한다. 가장 모호한 개별적 경험이 다른 이의 구체적인 경험을 불러내는 연결로 변환된다.

배규무의 작업은 특정한 사물보다 생명을 이루는 관계 자체를 표현하려 한다. 모든 유기체는 자기 삶의 지속을 추구하며, 이로 인해 다른 존재와의 교류가 불가피하다. 인간 체내의 미생물이 살아남기 위해 추구하는 국소적 관계에서부터 무한히 확장 가능한 유일한 본질, 삶을 견인하는 욕망이 바로 배규무가 주목하는 것이다. 이러한 욕망은 인과의 연쇄를, 타자와의 관계를 만든다. 하지만 이런 함께함은 평화롭게만 진행되지 않는다. 함께함은 욕망을 긍정하며 서로에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생존의 단초를 공유하는 것이다.

배규무의 작업에서는 자연과 문명 사이에 어떠한 구분도 존재하지 않는다. 문명 세계의 사랑과 헌신은 원시적 폭력성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비정형적인 틀 위에서 사물이나 상징과 격돌하는 것은 규범적 질서와 이성의 통제 아래 지하에 격리된 육체, 머리 없는 몸이다. 펠트의 거친 표면과 질감 위에서 등장하는 이질적 요소들은 생명의 작동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오일파스텔이 그리는 생명력은 피부의 윤곽을 뚫고 통제할 수 없이 흐른다.

유기체는 자기의 삶을 계속하기 위해 생산하고 먹어야만 한다는 일반 법칙[2]에 종속되며, 이것은 필연 적인 돌출과 과잉을 유발한다. 성장의 한계를 넘어서는 과잉의 폭발은 주체에게 위협적이며, 여기에 휘 말리지 않기 위해 흘러넘침은 전달되어야 한다. 초과분의 교환은 곧 서로의 기작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잇대는 행위다. 이와 함께 삶과 죽음은 순환하고, 생명은 뒤얽힌다. 주체를 주조하고, 우리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항상 나를 초과하는 타자의 흘러넘침이다.

배규무가 그리는 이 비극적 관계는 주체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 시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 피륙 위에서 주체는 수많은 연결 중 겨우 하나일 뿐이다. 신체는 타자와 조우하기 이전부터 무한히 많은 타자의 접촉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말해, 신체는 이미 타자성과의 관계를 전제하고 있고, 자아란 “타자를 품은 혼종적 존재”다. ‘나’에 맞서는 상대나 행위의 대상으로서 타자의 의미는 완전히 전환된다.

두 작가의 작업은 서로의 특색과 차이를 균질화하지 않으면서도, 중심을 비우고 절대적인 주체의 자리로부터 물러난다. 타자는 파악할 수 없는 불가항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희석되거나 증발됨 없이 움켜쥐는 손을 빠져나간다. 돈호법으로 부를 수 없는 이름이 우리를 무력하게 만든다. 그는 우리를 한계까지 몰아세우고 과제를 부여하며, 응답을 요구한다. 이처럼 허구적인 기원을 가정하는 대신, 두 작가는 타자를 직면하고 비-총체성으로서 우리를 향하길 제안한다.

[1] Gertenbach, L. & Richter, D. (2014). The Imaginary and the Community. Deliberations following the deconstructivist challenge of the thinking of community. OnCurating, (7).
[2] Bataille, G. (1949). La part maudite. Minuit. 최정우 (역). (2022). 『저주받은 몫』. 문학동네.
작가배규무, 유수진
전시장옥상팩토리 (Oksangfactory, オクサンファクトリ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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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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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는 길지하철 7호선 문정역 4번출구에서 도보 10분
기간2026.05.13(수) - 24(일, 공휴일)
관람시간13:00 - 19:00 / 13:00 - 21:00 (수요일)
마감 1시간 전 입장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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