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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로 산책하기

옥상팩토리

2023.04.30(일) - 05.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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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에 따르면, 근대의 인간은 사막 같은 세계를 헤매고 다니는 순례자이다. 순례자는 이 세상에서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느낀다. 그에게 ‘여기’는 자기 집이 아니며, 그렇기에 언제나 ‘저기’를 향해 가는 중이다. 이들의 길은 안전하지도, 보장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매일 비슷해 보이는 길을 걸으며 미세하게 달라진 계절감과 풍경 등 외부환경에 집중할 뿐이다. 이는 현실감각과는 조금 떨어져 일상적 대상과 풍경을 다르게 보고 자신의 감각이나 경험을 재구성하는 것과 유사하다.

근대적 순례자의 후예는 산책자와 방랑자이다. 이전보다 무엇이든 빠르고 다양하게 체험하려는 사람들은 놓치고 지나가는 것이 많다. 여기와 저기를 빠르게 이동하며 다양한 세계의 가능성을 얕게 맛볼 뿐이다. 지속의 경험이 희귀한 것이 되어버린 오늘날, 어떤 이들은 머무는 법을 안다. 누군가는 있는 줄도 모르고 빠르게 지나쳤던 아스팔트에 고인 빗물의 반짝임을, 또 다른 누군가는 무대 위 아이돌이 춤추고 간 자리에 남은 옷자락 끝부분을 바라본다. 이들은 각자의 박자에 맞추어 가끔은 뛰기도, 가끔은 멈추기도 하며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한 ‘사이 시간’을 걷는다.

이유진은 자신의 몸에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촉각적 감각을 수집한다. 깊은 물 속에서 잠수하며 피부에 와 닿는 물의 결들을 온몸으로 더듬는다. 물속에서의 경험은 현실세계와는 동떨어진 상태로 느릿한 시간을 타고 곡선적으로 흐른다. 몸이 물을 가르면 결들은 더욱 잘게 쪼개지고 생동한다. 미시적으로 감각한 결들이 축적되어 캔버스 화면에서 거시적인 푸른 풍경을 만든다. 작가의 기억과 감각에 의해 재구성된 얇은 선을 따라가다 보면 서로 얽힌 수많은 결들을, 그 사이의 시간들을 읽게 된다.

허가은은 바로크시대의 드레스부터 가상세계의 3D 모델링된 아이돌 무대의상의 드레이퍼리 이미지를 수집한다. 외면의 풍성함을 강조하기 위해 여러 겹 덧대어진 천들은 신체와 의상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내고, 신체의 움직임에 따라 공간의 모양은 유연하게 바뀐다. 선에서 시작된 장식은 쌓이면서 덩어리가 되는데, 작가는 주름을 통해 그 순간을 지각한다. 옷에서 팔의 트임이나 목과 손목의 파임은 실용적 이유 혹은 미적인 이유로 만들어진다. 트임과 파임은 외부 공간과 내부의 공간을 연결하는 일종의 ‘틈’이 되기도 한다. 디지털로 이미지를 수집하는 과정 중 우연히 캡쳐된 장면은 제작자의 의도와는 동떨어진, 틈에 의한 새로운 두께와 공간을 만들어낸다.

글: 문하은

기획: 문하은
주최 및 주관: 옥상팩토리
작가이유진, 허가은 Lee Youjin, Heo Gaeun
전시장옥상팩토리 (Oksangfactory, オクサンファクトリー)
주소
05855
서울특별시 송파구 법원로 4길 5 송파법조타운푸르지오시티 지하1층 B113호
오시는 길지하철 7호선 문정역 4번출구에서 도보 10분
기간2023.04.30(일) - 05.28(일)
관람시간13:00 - 19:00 / 13:00 - 21:00 (목요일)
마감 1시간 전 입장마감합니다.
입장료 3,000원
휴일화요일, 수요일
관람료3,000원 (전시장 옆 카페 이용시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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