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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부터(from the earth)

학고재

2025.08.20(수) - 09.13(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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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부터(from the earth)》
김환기, 송현숙, 박영하, 이진용, 박광수, 로와정, 지근욱

학고재는 2025년 8월 20일 (수)부터 9월 13일 (토)까지 김환기(1913-1974), 송현숙(1952-), 박영하(1954-), 이진용(1961-), 박광수(1984-), 로와정(1981-), 지근욱(1985-) 작가가 참여하는 단체전 《흙으로부터》를 개최한다. 전 세계 미술인들이 집결하는 2025년 키아프리즈 기간에 맞춰 열리는 이번 전시는 한국미술이 ‘흙’이라는 개념 안에서 어떻게 발화되고 전개되어 왔는지 조망하고, 그 예술적 사유가 국경을 넘어 전 세계와 어떠한 정서적 공명을 이룰 수 있을지 살펴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전시의 주제인 ‘흙’은 단순한 조형적 재료를 넘어선 존재론적 상징이다. 흙은 생명의 발아점이자 모든 것의 귀결되는 곳이며, 생성과 소멸, 기억과 망각, 정주와 유랑의 시간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비록 작은 입자들의 집합에 불과하지만, 뭉쳐지면 기물이 되고, 쌓이면 건축이 되어 인류 문명의 발전을 가능케 해왔다. 불에 타지 않고 고온을 견디며 오히려 더욱 단단해지는 성질과, 물을 만나면 반대로 부서지고 흩어지며 새로운 형상으로 태어나는 유연함을 동시에 지닌다.

흙은 동서양 사상을 관통하는 근원적 개념이다. 『주역』 64괘 중 두 번째인 ‘곤괘((坤卦))’는 대지를 상징하며,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음(陰)의 기운을 뜻한다. 곤괘의 핵심 사유인 ‘황중통리(黃中通理)’—“군자는 황색으로 안을 채우고 이치에 통달하여 바른 자리의 선다”—는 흙의 정신이 진리로 향하는 길임을 드러낸다. 프랑스의 사상가 가스통 바슐라르(1884-1962)는 서구 모더니즘의 이원론적 사고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흙/대지를 정서적 회복과 깊은 휴식의 장소, 몽상의 원천으로 재조명했다. 그는 흙으로부터 감싸 안음과 수용, 생명의 신비가 깃든 존재의 기반을 읽어내며, 무수한 시간과 사건을 통과해온 복합적이고 열려 있는 전체성의 질료로 여겼다. 흙은 이처럼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의 구분 너머 존재의 깊은 층위를 환기하는 질료이자, 우리가 발 디디고 살아가는 세계 그 자체이기도 하다. 희미하게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기억처럼 우리 안에 잔존하는 흙의 감각을 다시 불러내어, 오늘의 정체성과 미감, 그리고 세계 감수성의 연결 지점을 더듬어보고자 한다.

전시는 조선시대 도자에서 출발한다. 시대의 격변기에서 자유롭고 유연한 흙의 몸짓으로 태어난 분청사기, ‘텅 빈 충만’으로 온 우주를 고요히 품는 백자, 끝없이 펼쳐진 우주와 인간 내면의 심연을 담아낸 흑자는 한국 전통 예술에 깃든 흙의 철학을 환기한다. 이러한 전통의 맥락은 현대 회화로 확장된다. 김환기의 문자 추상은 고대 벽화나 흙바닥에 그린 어린아이의 낙서처럼 원초적인 감각을 일깨우며, 흙의 기억을 현대 추상의 언어로 구현한다. 송현숙은 흙의 질감과 향취를 머금은 사물을 통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낸다. 그의 회화는 관객을 물리적•정신적 뿌리로 귀환하게 한다. 박영하는 호주의 고대 원주민 미술에서 사용된 안료를 재현해, 시공간을 초월하는 흙의 보편성과 영원성, 신성과 물성을 동시에 탐구한다. 이진용은 노동집약적인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활자’ 시리즈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품은 내면의 입자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펼쳐져 구축되는 만다라와 같은 세계를 펼쳐낸다.

신관에서는 1980년대생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흙의 유연함과 가능성이 어떻게 동시대의 맥락 속에서 확장되고 있는지 살핀다. 박광수는 숲과 인간이 경계 없이 뒤섞인 풍경을 통해 자연의 연속성과 비경계성을 드러낸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구분 또는 위계가 사라져 모든 것이 일체 된 풍경은 땅으로부터 솟아오른 생명의 초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로와정은 설치와 사운드 작업을 통해 근대적 사고 체계에서 배제되고 사라지는 것들을 사유한다. 텅 빈 공간에서 반복되고 메아리치는 울림은 ‘없음’[無]과 ‘비어있음’[空]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설치 작품과 조응하며, 무한히 비어있고 무한히 펼쳐진 대지적 풍경을 만들어낸다. 지근욱은 반복적인 선 긋기를 통해 생성과 소멸의 순환과 무한히 확장되는 우주적 리듬을 캔버스에 담는다. 가능성의 상태로 진동하는 선들은 흙의 입자적 성질을 연상케 한다. 작가의 수행적 행위는 감각과 기억, 물질과 시간의 경계가 녹아든 비선형적 세계를 발견하게 하며, 시공을 초월한 사유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흙으로부터》는 무한한 정신의 세계를 품은 흙의 숨결을 따라, 전통과 현대, 물질과 정신, 고요한 기억과 살아 있는 감각 사이에 흐르는 연속성을 하나의 살아 있는 장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동시에,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응답을 제시하고,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철학적 사유의 공간을 구축하고자 한다. 흙은 모든 생명의 기원이자 종착지이며, 순환하는 자연의 심장 박동을 간직하고 있다. 또, 우리가 함께 딛고 선 ‘지구’라는 공동의 조건이기도 하다. 모든 시간과 공간을 품은 흙의 정신으로 돌아가, 분열과 갈등 속에 흔들리고 있는 동시대 사회에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전하기를 소망한다.
작가김환기, 송현숙, 박영하, 이진용, 박광수, 로와정, 지근욱
전시장학고재 (Hakgojae Gallery, ハッコジェ)
주소
03053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오시는 길지하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에서 도보 728m
기간2025.08.20(수) - 09.13(토)
관람시간10:00 - 18:00
휴일일요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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