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러쉬 존 CRUSH ZONE
안은샘, 이동훈, 임창곤
5.8 – 6.7
‘작은 공간 안에 밀어 넣는다’, 혹은 ‘으스러뜨린다’를 의미하는 '크러쉬(Crush)'와 구역을 뜻하는 '존(Zone)'을 합성하여 작명한 <크러쉬 존(CRUSH ZONE)>은 급변하는 산업사회에서 존재의 생동을 표현한 안은샘, 이동훈, 임창곤의 작업과 이들의 조우로부터 증폭된 장소를 비유한다. 각 작가가 일상에서 포착한 소재와 그것의 운동감은 달랐으나 그들은 움직임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힘의 작용과 그로부터 발생한 시공의 변화를 찰나의 오브제로 구현해 왔다. 자기 몸에서부터 출발하여 이웃하는 존재와 풍경까지, 여러 층위의 운동을 주목한 그들은 회화와 조각 등의 매체 속에 시간의 연속성을 중첩된 형태나 유기적으로 연결된 이미지로 담아냈다. 인물화의 바탕을 조각하고 그려내는 과정에서 근육과 내장의 움직임을 투영한 임창곤, 인물과 동식물의 동작을 관찰하며 조각과 회화의 조형을 도출한 이동훈, 그리고 근경과 원경에서 관측한 궤적을 기하학 도형으로 치환한 안은샘, 참여 작가들은 순간 속에 포착하다 금시에 놓쳐버린 움직임을 상상과 도구로 계측하고 몸의 감촉에 의지하여 매체와 전시 등의 압축된 시공간으로 현시하였다.
움직임이 교차하고 힘들이 충돌하는 크러쉬 존은 창작자들의 몸짓을 경유하며 점진적으로 확장해 나간다. 시작은 생활의 반경과 육체로 작가들이 존재를 처음 마주했던 현장이자 동시에 떠나보낸 자리이기도 하다. 관찰과 접촉에 따라 작가들에게 지각된 존재는 한동안, 또는 찰나에 있었음을 자각하도록 만드는데, 몸의 물리적 제약으로 인해 온전히 품을 수 없던 대상은 의식 속에 인상으로 각인이 되고 곁에서 사라진다. 삶에서 관념으로 미끄러진 생동감이 현실로 출현하는 것은 작가들이 창작한 매체의 영역이다. 미동이 없는 회화와 조각을 운동의 매개물로 삼는 그들에게 동세를 형상화하는 일은 시간을 역행하려는 모순된 몸짓과도 같다. 이들은 자신들로부터 멀어진 움직임 대신 눈앞의 질료를 쥐고 목격했던 역동감을 질량과 형태로 변형해 나간다. 각자의 템포에 따라 움직임을 쫓아간 손길은 재료로부터 형상이 여러 갈래로 분절되고 결합된 덩어리를 더듬어 내는데, 해당 형태는 표면으로 드러나는 부분과 내부로 은폐된 외관을 갖추고 있어 보는 이들이 존재를 단번에 알아볼 수 없도록 만든다. 이처럼 선명하지 않은 심상과 물질의 감각에 의지하여 소멸했던 생동은 타자, 혹은 객체에 다가서는 동작과 비껴가는 동작으로 이루어진 환영적 실재로 복귀한다.
더 나아가 한 사람의 크러쉬 존은 다른 이의 크러쉬 존과 공명함으로써 제3의 영역을 펼쳐내기 시작한다. 다른 시차와 장소 속에서 파생된 개개인의 다이너미즘(Dynamism)은 전시장 안에 모이면서 현재의 시간과 공간을 쪼개고 재조직하는 요소로 운용한다. 역동감을 자아내고 있는 작품들은 건물 구조와 상응함으로써 동선에 변곡점을 형성하는데, 세 작가의 작품에서 발현하는 시점, 형태, 명도, 그리고 속도감의 차이로 인해 관객들은 관람 중에 시선과 동세의 갑작스러운 전환을 겪게 된다. 각자의 독자적인 움직임이 엇갈리면서도 하나의 운동(movement)으로 연동하는 크러쉬 존은 존재들 사이의 벌어진 간극을 좁혔다가 밀쳐내는 몸부림들이 혼재한 플랫폼으로 펼쳐진다. 이 몸부림은 생동의 시초가 되었던 과거와 이에 접속하려는 현재, 그리고 타인들의 시간이 교감하는 현상으로 한때 우리에게 다가오고 잊힌 생(生)을 우리 곁으로 도래시킨다.
동시대에 연속된 시간을 직접 투사하는 미디어들 사이에서 작가들이 고수한 회화적, 조각적 ‘다이너미즘(Dynamism)’은 급격한 산업화에 거스르는 양식으로 비추어진다. 본래 다이너미즘은 기술문명의 진취성과 역동성을 예찬했던 20세기 미래주의 미술의 경향으로, 과거의 유산을 파괴하고 산업화와 과학기술이 불러올 문명의 진보를 기대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을 통해 기술문명의 폐단을 목도한 미래주의는 역동성을 표현할 조형 언어를 남기고 역사에서 물러났다. 외관상 유사한 양상을 내비치는 듯하지만, 오늘날에 움직임과 힘의 관계를 가시화하는 참여 작가들은 비선형적인 시간관과 관계지향적인 태도를 겸비한다는 점에서 다른 노선을 취한다. 근대의 다이너미즘은 새로운 내일을 향한 급격한 발전을 추구했다면, 크러쉬 존은 그로 인하여 파괴된 작금의 풍경과 소외된 존재들의 크고 작은 요동을 조명한다. 미래주의와 반대로 이곳의 다이너미즘은 미래로 돌진하는 기계의 역동이 아닌 호흡하는 이들의 동세, 급격한 변화 속에서 도외시된 생명의 활동이다. 이에 기반한 크러쉬 존은 근대부터 오늘날까지도 진행 중인 산업화의 굴레에서 객체를 점유하는 주체성의 대척점으로 타자와 객체, 그리고 자연에 이르려는 추동의 장으로 공개된다.
글 양기찬 (갤러리에스피 큐레이터)
안은샘
현실의 역학과 대상의 성질로부터 조형원리를 도출해 낸 작가는 존재의 본래 특징을 소거하고 외간만을 남긴 형상을 회화의 점, 선, 면으로 치환한다. 마주했던 존재는 색감, 명도, 면적 등이 부각되는 레이어로 단순화되었기에 보는 이들에겐 정보를 전달하는 도상이 아닌 정동을 일으키는 자극으로 접해진다. 현실의 원형이 생략된 모노톤 색면은 회화를 구성할 얇은 요소에 불과하지만, 작가는 평면 조각들을 콜라주로 조립하는 과정에서 삶에서 목도한 존재들의 씨름을 상기할 수 있었다. 풍경에서 채집된 레이어는 다른 레이어와의 조합에 따라 화면 속에서 중심이 되기도, 배경이 되기도 하는데, 작은 색면이 다른 색면의 자리를 내주기 위해 찢기고 합치되는 콜라주-회화를 통해 작가는 정반합이 벌어지는 현실의 움직임들을 암시한다.
이동훈
작가는 회화가 스스로를 자명하는 회화를 그리고자 했으나, 순전한 회화를 볼 수 없었기에 자신의 곁을 맴도는 존재들에게서 그 단초를 물색하려 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반려묘의 걸음과 자라나는 화분의 굴곡들, 미디어에서 접한 인물들의 안무 등 대상의 형태와 동작을 관찰하며 그는 형상이 유동하며 와해하는 비구상적 순간을 포착하였다. 그는 변화하는 윤곽을 나무와 종이 등에 조각함으로써 회화적 조형을 연구할 정물을 창작하고자 했는데, 뜻밖에도 추상화를 그리기 위해 마련된 오브제는 작가에게 질료의 물성과 표면을 둘러싼 공간을 실감하도록 만들었다. 현실과 환영의 사이, 구상과 비구상의 언저리로부터 생동하는 존재와 물질을 자각하게 된 작가는 동세의 여러 형태가 겹친 조각을 통해 자신에게 나타나면서도 미지로 남겨진 객체를 조우할 수 있었다.
임창곤
인체를 이미지화하고, 이미지화 한 인체를 실체화한 작가의 작품은 자신과 타자, 그리고 매체 간의 경계를 버무린다. 회화의 바탕이 되는 목판을 유기적인 형태로 조각하고 그 위에 신체를 그려내는 동안, 작가는 자신의 몸에서 동원되는 근육과 내장의 움직임을 민감하게 의식한다. 몸으로는 느껴지지만, 눈으로는 볼 수 없던 신체의 영역이었기에 그는 가공 중에 실시간 변화하는 목판의 모양과 연상되는 몸을 통해 그 내부를 더듬어 본다. 자신의 몸으로부터 비롯된 형상이었으나 프레임을 비틀며 밖으로 뻗쳐 나가는 인체는 자신의 것이 아닌 누군가의 몸이 되기도, 극단적으로 몸에서 일탈한 무언의 자연물로 변모해 나간다. 점액으로 덮인 듯한 유사 인체는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나서 건물의 표면을 타고 흐르며 공간 속 어딘가 있을 누군가에게 닿아보려 한다.
- 전시 제목: 크러쉬 존 CRUSH ZONE
- 참여 작가: 안은샘, 이동훈, 임창곤
- 전시 기간: 2025.5.8 (목) - 6.7 (토)
- 오 프 닝: 2025.5.8(목) 17:00 ~
- 전시장소: 서울시 용산구 회나무로44가길 30
- 개관시간: 화 - 토 10:00 - 18:00 (일, 월 휴관)
- 문 의 : 02.546.3560 / [email protected]
안은샘, 이동훈, 임창곤
5.8 – 6.7
‘작은 공간 안에 밀어 넣는다’, 혹은 ‘으스러뜨린다’를 의미하는 '크러쉬(Crush)'와 구역을 뜻하는 '존(Zone)'을 합성하여 작명한 <크러쉬 존(CRUSH ZONE)>은 급변하는 산업사회에서 존재의 생동을 표현한 안은샘, 이동훈, 임창곤의 작업과 이들의 조우로부터 증폭된 장소를 비유한다. 각 작가가 일상에서 포착한 소재와 그것의 운동감은 달랐으나 그들은 움직임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힘의 작용과 그로부터 발생한 시공의 변화를 찰나의 오브제로 구현해 왔다. 자기 몸에서부터 출발하여 이웃하는 존재와 풍경까지, 여러 층위의 운동을 주목한 그들은 회화와 조각 등의 매체 속에 시간의 연속성을 중첩된 형태나 유기적으로 연결된 이미지로 담아냈다. 인물화의 바탕을 조각하고 그려내는 과정에서 근육과 내장의 움직임을 투영한 임창곤, 인물과 동식물의 동작을 관찰하며 조각과 회화의 조형을 도출한 이동훈, 그리고 근경과 원경에서 관측한 궤적을 기하학 도형으로 치환한 안은샘, 참여 작가들은 순간 속에 포착하다 금시에 놓쳐버린 움직임을 상상과 도구로 계측하고 몸의 감촉에 의지하여 매체와 전시 등의 압축된 시공간으로 현시하였다.
움직임이 교차하고 힘들이 충돌하는 크러쉬 존은 창작자들의 몸짓을 경유하며 점진적으로 확장해 나간다. 시작은 생활의 반경과 육체로 작가들이 존재를 처음 마주했던 현장이자 동시에 떠나보낸 자리이기도 하다. 관찰과 접촉에 따라 작가들에게 지각된 존재는 한동안, 또는 찰나에 있었음을 자각하도록 만드는데, 몸의 물리적 제약으로 인해 온전히 품을 수 없던 대상은 의식 속에 인상으로 각인이 되고 곁에서 사라진다. 삶에서 관념으로 미끄러진 생동감이 현실로 출현하는 것은 작가들이 창작한 매체의 영역이다. 미동이 없는 회화와 조각을 운동의 매개물로 삼는 그들에게 동세를 형상화하는 일은 시간을 역행하려는 모순된 몸짓과도 같다. 이들은 자신들로부터 멀어진 움직임 대신 눈앞의 질료를 쥐고 목격했던 역동감을 질량과 형태로 변형해 나간다. 각자의 템포에 따라 움직임을 쫓아간 손길은 재료로부터 형상이 여러 갈래로 분절되고 결합된 덩어리를 더듬어 내는데, 해당 형태는 표면으로 드러나는 부분과 내부로 은폐된 외관을 갖추고 있어 보는 이들이 존재를 단번에 알아볼 수 없도록 만든다. 이처럼 선명하지 않은 심상과 물질의 감각에 의지하여 소멸했던 생동은 타자, 혹은 객체에 다가서는 동작과 비껴가는 동작으로 이루어진 환영적 실재로 복귀한다.
더 나아가 한 사람의 크러쉬 존은 다른 이의 크러쉬 존과 공명함으로써 제3의 영역을 펼쳐내기 시작한다. 다른 시차와 장소 속에서 파생된 개개인의 다이너미즘(Dynamism)은 전시장 안에 모이면서 현재의 시간과 공간을 쪼개고 재조직하는 요소로 운용한다. 역동감을 자아내고 있는 작품들은 건물 구조와 상응함으로써 동선에 변곡점을 형성하는데, 세 작가의 작품에서 발현하는 시점, 형태, 명도, 그리고 속도감의 차이로 인해 관객들은 관람 중에 시선과 동세의 갑작스러운 전환을 겪게 된다. 각자의 독자적인 움직임이 엇갈리면서도 하나의 운동(movement)으로 연동하는 크러쉬 존은 존재들 사이의 벌어진 간극을 좁혔다가 밀쳐내는 몸부림들이 혼재한 플랫폼으로 펼쳐진다. 이 몸부림은 생동의 시초가 되었던 과거와 이에 접속하려는 현재, 그리고 타인들의 시간이 교감하는 현상으로 한때 우리에게 다가오고 잊힌 생(生)을 우리 곁으로 도래시킨다.
동시대에 연속된 시간을 직접 투사하는 미디어들 사이에서 작가들이 고수한 회화적, 조각적 ‘다이너미즘(Dynamism)’은 급격한 산업화에 거스르는 양식으로 비추어진다. 본래 다이너미즘은 기술문명의 진취성과 역동성을 예찬했던 20세기 미래주의 미술의 경향으로, 과거의 유산을 파괴하고 산업화와 과학기술이 불러올 문명의 진보를 기대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을 통해 기술문명의 폐단을 목도한 미래주의는 역동성을 표현할 조형 언어를 남기고 역사에서 물러났다. 외관상 유사한 양상을 내비치는 듯하지만, 오늘날에 움직임과 힘의 관계를 가시화하는 참여 작가들은 비선형적인 시간관과 관계지향적인 태도를 겸비한다는 점에서 다른 노선을 취한다. 근대의 다이너미즘은 새로운 내일을 향한 급격한 발전을 추구했다면, 크러쉬 존은 그로 인하여 파괴된 작금의 풍경과 소외된 존재들의 크고 작은 요동을 조명한다. 미래주의와 반대로 이곳의 다이너미즘은 미래로 돌진하는 기계의 역동이 아닌 호흡하는 이들의 동세, 급격한 변화 속에서 도외시된 생명의 활동이다. 이에 기반한 크러쉬 존은 근대부터 오늘날까지도 진행 중인 산업화의 굴레에서 객체를 점유하는 주체성의 대척점으로 타자와 객체, 그리고 자연에 이르려는 추동의 장으로 공개된다.
글 양기찬 (갤러리에스피 큐레이터)
안은샘
현실의 역학과 대상의 성질로부터 조형원리를 도출해 낸 작가는 존재의 본래 특징을 소거하고 외간만을 남긴 형상을 회화의 점, 선, 면으로 치환한다. 마주했던 존재는 색감, 명도, 면적 등이 부각되는 레이어로 단순화되었기에 보는 이들에겐 정보를 전달하는 도상이 아닌 정동을 일으키는 자극으로 접해진다. 현실의 원형이 생략된 모노톤 색면은 회화를 구성할 얇은 요소에 불과하지만, 작가는 평면 조각들을 콜라주로 조립하는 과정에서 삶에서 목도한 존재들의 씨름을 상기할 수 있었다. 풍경에서 채집된 레이어는 다른 레이어와의 조합에 따라 화면 속에서 중심이 되기도, 배경이 되기도 하는데, 작은 색면이 다른 색면의 자리를 내주기 위해 찢기고 합치되는 콜라주-회화를 통해 작가는 정반합이 벌어지는 현실의 움직임들을 암시한다.
이동훈
작가는 회화가 스스로를 자명하는 회화를 그리고자 했으나, 순전한 회화를 볼 수 없었기에 자신의 곁을 맴도는 존재들에게서 그 단초를 물색하려 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반려묘의 걸음과 자라나는 화분의 굴곡들, 미디어에서 접한 인물들의 안무 등 대상의 형태와 동작을 관찰하며 그는 형상이 유동하며 와해하는 비구상적 순간을 포착하였다. 그는 변화하는 윤곽을 나무와 종이 등에 조각함으로써 회화적 조형을 연구할 정물을 창작하고자 했는데, 뜻밖에도 추상화를 그리기 위해 마련된 오브제는 작가에게 질료의 물성과 표면을 둘러싼 공간을 실감하도록 만들었다. 현실과 환영의 사이, 구상과 비구상의 언저리로부터 생동하는 존재와 물질을 자각하게 된 작가는 동세의 여러 형태가 겹친 조각을 통해 자신에게 나타나면서도 미지로 남겨진 객체를 조우할 수 있었다.
임창곤
인체를 이미지화하고, 이미지화 한 인체를 실체화한 작가의 작품은 자신과 타자, 그리고 매체 간의 경계를 버무린다. 회화의 바탕이 되는 목판을 유기적인 형태로 조각하고 그 위에 신체를 그려내는 동안, 작가는 자신의 몸에서 동원되는 근육과 내장의 움직임을 민감하게 의식한다. 몸으로는 느껴지지만, 눈으로는 볼 수 없던 신체의 영역이었기에 그는 가공 중에 실시간 변화하는 목판의 모양과 연상되는 몸을 통해 그 내부를 더듬어 본다. 자신의 몸으로부터 비롯된 형상이었으나 프레임을 비틀며 밖으로 뻗쳐 나가는 인체는 자신의 것이 아닌 누군가의 몸이 되기도, 극단적으로 몸에서 일탈한 무언의 자연물로 변모해 나간다. 점액으로 덮인 듯한 유사 인체는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나서 건물의 표면을 타고 흐르며 공간 속 어딘가 있을 누군가에게 닿아보려 한다.
- 전시 제목: 크러쉬 존 CRUSH ZONE
- 참여 작가: 안은샘, 이동훈, 임창곤
- 전시 기간: 2025.5.8 (목) - 6.7 (토)
- 오 프 닝: 2025.5.8(목) 17:00 ~
- 전시장소: 서울시 용산구 회나무로44가길 30
- 개관시간: 화 - 토 10:00 - 18:00 (일, 월 휴관)
- 문 의 : 02.546.3560 / [email protected]
| 작가 | 안은샘, 이동훈, 임창곤 |
| 전시장 | 갤러리에스피 (Gallery SP, ギャラリーSP) |
| 주소 | 04346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44가길 30주소 복사하기복사 |
| 오시는 길 | 1. 남산 하얏트 호텔 앞 버스 정류장(402, 405번 버스) 에서 도보로 5분. 2. [권장] 녹사평역(6호선) 4번 출구에서 마을버스 03번 탑승 후 종점 하얏트 호텔에서 도보로 5분. 3. 이태원역(6호선) 2번 출구에서 도보로 20분. (가파른 언덕길입니다.) |
| 기간 | 2025.05.08(목) - 06.07(토) |
| 관람시간 | 10:00-18:00 |
| 휴일 | 일요일, 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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