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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Silver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2025.04.23(수) - 06.0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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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윤, 《실버》(아라리오갤러리 서울, 2025) 전시전경.
구지윤, 《실버》(아라리오갤러리 서울, 2025) 전시전경.
전시개요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은 2025년 4월 23일(수)부터 6월 7일(토)까지 구지윤(b. 1982) 개인전 《실버》를 연다. 구지윤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서울의 도시 풍경으로부터 추출한 인상과 정서를 추상회화의 언어로 번안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그는 끝없이 솟아나고 무너지기를 반복하는 건물과 도로, 갖가지 인공 구조물이 밀집한 도시의 속성에 생물학적 유기체의 모습을 투영하여 본다.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유기적 존재들처럼 언젠가 기억 속에만 남게 될 도시의 운명을 연민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구지윤이 아라리오갤러리에서 4년 만에 개최하는 개인전으로, 그가 최근까지 제작한 근작 및 신작 회화 21점을 선보인다. ‘실버’라는 열쇠말 아래 도시의 시간성을 회화의 언어로 풀어낸 다채로운 결과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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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주제

‘실버’ – 빛과 시간의 투영체
구지윤이 바라보는 서울은 회색과 은빛 주조의 풍경이자, 켜켜이 중첩된 시간의 지층을 품은 회화적 대상이다. 은빛은 색(色)의 세 가지 속성인 명도, 채도, 색상 가운데 명도의 차이만을 지니는 무채색의 본질에 기반하지만 주위의 빛을 찬란하게 반사하는 성질을 지녀 무광의 회색과 전혀 다른 종류의 정서적 움직임을 불러일으키는 빛깔이다. 회색이 도심 속 오래되어 사라지는 것들 위에 덧씌워진 고층 건물의 표면을 떠올리도록 한다면, 반짝이는 은빛은 한강 위 물비늘이 품은 무언의 생명력을 연상시킨다. 도시의 은빛은 구지윤에게 있어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지워진 것과 남겨진 것 사이를 떠도는 빛”이다.

전시명인 《실버》는 주제로서의 도시와 매체로서의 회화 양측에 내재한 ‘빛’과 ‘시간’을 동시에 상징한다. ‘실버’는 대상의 표면에 맞닿은 빛을 반사하여 보는 자에게 되돌려주는 매개체이자 투영체이다. 그것은 은빛 자체를 지시하는 단어라기보다, 모든 색에 ‘빛’과 ‘시간’의 속성이 내재하여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상징이다. 회화의 화면 위에 중첩된 다양한 색들은 제각기 다른 파장을 지닌 빛의 편린이다. 서로 다른 물리적 성질에 의하여 반사된 빛은 우리의 시각 체계에 의하여 때로 찬란한 유채색으로, 또는 고요한 무채색으로 포착된다. 대상을 경유하여 색으로 되돌아온 빛은 보는 자의 감정과 정서에 관여하는 심미적 요소로서 거듭난다.


시간이 스민 장(場)으로서의 회화
빛깔로서의 ‘실버’를 포함하여, 모든 색을 시지각적으로 인식하기 위하여서는 반사체로서의 대상이 머금은 빛을 다시금 풍경에 되돌려주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시간은 구지윤의 작품세계를 구축하는 또 하나의 중심 개념이다. 그는 물감의 층위를 쌓아 올리는 붓의 움직임에 도시의 시간성을 투영한다. 색이 쌓이고 묻히기를 거듭하는 회화의 과정 속에서, 화면은 “시간이 스며든 장(場)”으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한다. 《실버》라는 전시명과 <빈티지>(2025), <파티나>(2025), <빛바랜 실버>(2025), <화석>(2025) 등의 작품명은 저마다 ‘시간의 축적’과 ‘나이 듦’의 감각을 환기한다. 수많은 것들이 바삐 지어지고 금세 사라지는 오늘날 도시의 생태 가운데, 어떠한 대상과 존재들은 오래도록 같은 자리에 머물며 나이 들어 간다. 기억과 역사를 켜켜이 품은 사물과 장소, 사람들은 그 ‘시간’을 반사하여 세상에 되돌려줌으로써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존재로 거듭나기도 한다. 오래되고 낡은 것을 연상시키는 낱말들은 구지윤의 화면 위에서 ‘소멸’이 아닌 ‘축적’을 지시한다. 전시의 출품작들은 회화의 언어로 묘사된 대상들이 각자 어떠한 시간을 반사하고 투영하는지, 그럼으로써 어떻게 인지되는지에 관한 탐구의 결과물이다. 구지윤에게 회화란 ‘감각의 기록’이자 ‘시간의 보존 수단’이며 “사라진 것들이 화석이 되어 미래로, 현재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현재의 것을 기록하고 견고하게 물질화하여 내일 혹은 더 먼 미래로 보내 그것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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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실버 – 반사된 시간의 흔적 / 구지윤

나는 작업실로 향하는 길에 다세대 주택으로 둘러싸인, 다소 당황스런 장소에 자리 잡은 백제시대 고분을 지나며, 이 도시가 얼마나 많은 층위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새삼스레 생각한다. 언뜻 보기에 익숙한 주변의 도심 풍경이지만, 이곳에는 수천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 내비게이션의 지시에 따라 달리는 아스팔트 도로 아래에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서울이 존재한다. 오랜 시간을 견디며 남겨진 것은 거의 없지만, 신축 공사 중 우연히 드러나는 과거의 흔적들을 마주할 때, 수천 년의 시간과 사라진 것들이 얼마나 얇고 취약한 층을 이루며 우리와 공존하고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누군가 서울의 색을 물어보면, 나는 ‘그레이’와 ‘실버’ 사이에서 고민한다. 회색은 모든 것을 흡수하고 평평하게 만드는 특유의 불투명성으로 사라진 것이 있던 자리 위로 새로운 것을 덧씌우는 색이다. 작업실 창문으로 보이는 롯데타워, 대규모 신축 아파트 단지, 무인 상점 속 키오스크. 새롭고 낯선 것으로 오래되고 익숙한 것의 흔적을 지우는 거대하지만 공허한 색이다. 반면, 실버는 반사한다. 과거의 빛을 받아 되돌려 보내며, 우리가 알지 못했던 시간의 흔적을 순간적으로 되살려 놓는다. 그것은 한강의 부서지는 물비늘에서, 공사장에서 발견된 토기의 파편에서, 혹은 재개발 이후 버려진 길고양이 곁에서 반짝인다. 실버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지워진 것과 남겨진 것 사이를 떠도는 빛이다. 실버는 축적된 기억의 반사이며, 순간적으로 나타나 존재하는 과거이며, 사라지지 않는 시간의 잔영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며 붓 자국의 중첩이 도시의 시간성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색이 쌓이고, 지워지고, 다시 겹쳐지는 과정에서 그 표면은 더 이상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이 스며든 장(場)으로 변한다. 작업 과정에서 처음에는 무질서하게 보였던 붓 자국들이 이제껏 쌓인 이미지와 함께 서서히 의미 있는 구조를 형성하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데, 어느 순간 그것이 결코 우연한 배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곤 한다. 

나는 지금, 여기를 그리려 한다.  회화로 그것을 남기는 일은 단순한 풍경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여기로 되돌아오는 시간의 흔적을 붙잡는 일이다. 마치 지금은 사라진 것들이 화석이 되어 미래로, 현재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현재의 것을 기록하고 견고하게 물질화하여 내일 혹은 더 먼 미래로 보내 그것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다.

우리가 잊었다고 생각했던 것들, 사라졌다고 믿던 것들이 빛에 반사된 먼지처럼 여전히 어딘가에 머물고 있다. 나는 ‘그레이’로 둘러싸인 여기에서 ‘실버’를 찾는다. 반사되는 빛 속에서 우리는 한때 존재했던 가치들을 마주하게 된다. ‘실버’의 순간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작가구지윤
전시장아라리오갤러리 서울 (ARARIO GALLERY SEOUL, アラリオギャラリー・ソウル)
주소
03058
서울 종로구 율곡로 85 아라리오갤러리
오시는 길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에서 181m
기간2025.04.23(수) - 06.07(토)
관람시간11:00-18:00
휴일일요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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