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ding Gravity, Weaving Sound》
김온 개인전
2024년 11월 8일(금) - 11월 30일(토)
시각과 청각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물질과 비물질, 볼륨과 무게 사이의 긴장감과 포용을 ‘소리 표면 덩어리’로 구현
귀로 듣는 소리의 경험을 넘어, 공간 속 소리의 ‘존재감’을 체험
소리의 역학을 점, 선, 면이라는 시각적 언어로 해석
소리를 시간과 함께 움직이며 변화하는 대상으로 상정, 변화의 과정을 나타낸 오브제로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소리 표면 덩어리’로 구축
작가 김온의 세계에서 소리는 청취의 대상을 넘어 세계의 구조(중력과 공간) 사이에서 끊임없이 형상을 얻고 사라지는 순환의 형태를 가진 ‘보이지 않는 조각’으로 진화
김온(b.1971, 서울 출생)은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 회화과, 프랑스 낭트 미술학교 순수미술과, 파리8대학 조형예술학과, 스트라스부르 고등 장식미술학교(현 Haut école des arts du Rhin) Object-Book학과에서 석사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Sound로 포스트디플롬 연구과정을 거쳤다.
주요 전시로는 개인전 《PhonicAphonic》(갤러리조선, 서울, 2020)과 단체전 《공동의 감각》(대전시립미술관, 대전, 2024), 《내밀한 추동》(SeMA창고, 서울, 2022), 《사랑을 위한 준비운동》(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서울, 2021), 《Volume vs Volume》(김온홍승혜 이인전, 드로잉룸, 서울, 2020)을 비롯한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하였다. 음악가 및 문학작가와 협업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하며, 대구예술발전소(2020), 청주 창작스튜디오(2013), 인천아트플랫폼(2009)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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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을 접고, 소리를 엮다”:
무형의 소리를 따라 형태에 이르기까지 / 글 예목준
“La neige ne monte pas
mais, prenant son élan,
descend, et puis se pose.
Jamais elle ne monta.(…)”
<Microgramme 119>, Robert Walser
"눈은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나, 힘을 모아 내려앉고,
자리 잡고 멈춘다
결코 그것은 올라간 적이 없다.(…)"
<마이크로그램 119>, 로베르트 발저
‘세상에 소리가 없다면, 무게도 없을 것이다. 소리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단순한 파동이 아니다. 그것은 중력을 지니고, 무게를 가지고, 형상을 드러내며, 시각적 경계에 닿는 실체로 다가온다.’ 소리가 단지 물리적 현상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의 형태로 태어날 수 있음을 탐구하는 자리를 김온의 전시 《Folding Gravity, Weaving Sound》에서 발견할 수 있다. Folding Gravity, Weaving Sound는 말 그대로 소리의 지각을 ‘뒤집고’, 청각의 ‘구조’를 새로이 구성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무언가를 귀로 듣고 그것이 시각적 형상으로 ‘보이는’ 경험, 나아가 그것이 물질화되어 공간에 서는 과정을 이 전시는 단순히 소리를 물질로 변환하려는 예술적 시도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는 소리, 즉 보이지 않는 진동과 무형의 흔적을 물질적 대화로 끌어내려는 시선이 숨어 있다.
소리를 통해 형상을 그리는 작업은 김온 작가가 “소리내어 읽기”라는 행위에 집중하면서 얻은 통찰에서 비롯되었다. 시간과 함께 움직이며 변화하는 소리의 발화는 고정된 대상이 아닌, 시간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진화하는 유동적인 형상으로 나타나며, 이 과정의 발단으로 작가는 표면에 중력의 무게를 드리운 프린트 페이퍼 작업, 앰비언트 사운드 작업, 벽 공간을 가로지르는 구리선, 바닥에 놓인 셔틀콕과 솔방울과 같은 오브제를 통해 각각 독립된 작품이면서도, 각 작품들은 서로 관계 맺으면서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소리 표면 덩어리로 띄운다.
《Folding Gravity, Weaving Sound》 전시에는 흔히 보이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소리의 역학을 점, 선, 면이라는 시각적 언어로 번역한다. <Il neige (Robert Walser) 눈 내리다 (로베르트 발저)>, <Il neige, neige (Robert Walser) 눈, 눈 내리다 (로베르트 발저)> 시리즈에서는 접힌 종이를 프레스기에 눌러 납작해질대로 납작해진 종이를 스캔하고 확대함으로써 여백이라는 단순한 공간이 일종의 무게감을 지니도록 만든다. 마스킹 테이프가 선명하게 드러낸 경계는 여백의 시작과 끝을 지정하며, 그 속에 고요한 공간의 깊이를 암시한다. 흡사, 이 여백은 발저의 마지막 순간처럼 “무엇이 되지 못한” 것을 상기시키며, 소리 없이 떠도는 중력의 무게를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장치가 된다. 소리와 중력이, 소리와 부피가 어떻게 서로를 규정하고, 서로를 통해 형상화되는지 그래서 ‘소리’와 ‘형태’의 개념적 구분을 해제하여 그 둘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Parallel Line in the Flatland-Volume 평면세계의 평행선-볼륨> 시리즈에서 보이는 얇은 스틸 와이어의 라인은 평면에서 새로운 차원을 암시하며 아래로 늘어진 포물선은 공간을 가로지른다. 이 선들은 일종의 ‘음파’처럼 보이기도 하며,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소리의 흔적을 그려낸다. 마치 소리의 진동이 공간을 울리고, 이 와이어가 그 파동의 잔상을 표현하는 것처럼, 그의 선은 시간과 공간을 가르는 추상적 경계이자 새로운 차원의 “형태”로 다가온다.
전시장을 채우는 각각의 작품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유기적인 소리 발생 형태의 생태계를 형성한다. 이를 포괄하는 배경 작품은 앰비언트 사운드 워크 <Bus Stop in Mid-Air 공중에 떠있는 버스 정류장>이다. 이 앰비언트 사운드 작업에 임의로 소속된 <Before It Becomes a Sound 소리가 되기 전>, <Shuttlecocks on the Ground 지상의 셔틀콕>, <Pine Cones on the Ground 지상의 솔방울>작품은 서로 느슨하게 배치된 상태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전체적인 의미를 완성한다. <Bus Stop in Mid-Air 공중에 떠있는 버스 정류장>에는 펼쳐진 부채꼴 모양을 갖춘 전시 공간 모퉁이 바닥에서 15도 각도 위로 향한 스피커가 있다. 공간에 메꿔지는 녹음된 소리들– 매미 소리, 주변 사람들의 대화, 공사 장비 소음 –과 함께 창작된 사운드는 일종의 음향적 풍경을 구축한다. 이는 일상의 소음이 마치 실체를 가진 듯 둥둥 떠다니며 공간을 지배하는 감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청각적 사운드가 이처럼 공간을 아우르고 감각적인 힘을 발휘할 때, 시각적 요소를 넘어서 청각적 경험의 확장으로 기능하며 물질과 형태를 통해 순환한다. 벽을 따라 길고 느슨하게 횡단하는 얇은 구리선으로 소리의 흐름을 암시하는 듯한 <Before It Becomes a Sound 소리가 되기 전>는 구리선의 길고 가는 형태의 선들은 보이지 않는 소리의 파동을, 혹은 중력이 만들어내는 곡선을 연상케 한다. 이 설치물은 단순히 공간을 채우기보다 공간을 확장시킨다. 부스 바에 고정된 구리선은 벽과 결합하여 지하의 접지 역할을 상징하며, 청각적 경험의 출발점을 형상화한다. 구리선을 따라 흐르는 전류는 아직 소리로 완성되지 않은 에너지를, 즉 잠재적 소리의 형태를 은유하고 이러한 구조는 소리가 형태를 갖추기 이전, 에너지가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흘러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하는듯 보인다. <Shuttlecocks on the Ground 지상의 셔틀콕>, <Pine Cones on the Ground 지상의 솔방울>은 무심히 놓여있거나 결집된 집단처럼 서로 대비를 이루며 지상으로 떨어지는 숙명을 가진 부드럽고 딱딱한 물질이다. 공간을 감싸는 사운드 작업은 이 두 오브제의 비상/나른함과 쇠퇴/견고 사이에서 소리에 의한 무게를 저울질한다.
<Floating Sound Point: Boom! 부유하는 소리 점: 붐!>에서는 단순한 물질의 배열을 넘어 보이지 않는 소리의 잠재적 형상을 안내한다. 작품은 동전, 형광색연필, 콘테라는 일상적이고 소박한 재료들을 통해 거대한 폭발음—의성어로 표현되는 ‘쾅’—의 이미지 가리키는 도상을 감추고 은유하며 소리의 존재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단면적으로 보자면 미약한 가치를 가지는 10원짜리 동전이 거대한 굉음을 내어 소리의 형상화되는 발상은 그 어딘가에 로베르트 발저의 장난스러운 짖궂음을 떠올려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구리빛을 띤 10원짜리 동전들은 벽 위에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듯 보이나, 각 점들을 연결하면 작가가 벽 위에 그리고 지워버린 폭발음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관객들은 보이지 않는 형상을 유추해낼 수도 있다. 이는 마치 무질서 속에서도 조화로운 패턴을 지니는 마치 별자리의 배치처럼 자연의 법칙과 닮아 있다. ‘점’에서 시작해 ‘면’으로 확장되는 소리의 굉음의 감춰진 형상은 우리가 별자리의 각 점을 연결하여 보이지 않는 면적을 지각하고 형상을 떠올리는 이치와 맞닿아 있다. <Papers Tune 페이퍼 튠> 작품에서는 다양한 종이를 쌓아 올려 한번에 스캔된 이미지를 통해 시각화된 소리의 조율을 가늠해 볼 수 있으면서 동시에 마치 모튼 펠드먼 (Morton Feldman)의 음악을 응축하여 묶어낸 덩어리를 연상하게 한다. 작가에 의해 고이 컬렉션된 나무젓가락 종이 커버 부분, 담배 종이를 보호하는 얇은 종이로 재배열된 <There Is Wind for Everything that Falls (Madam, prêt à porter) 하강하는 모든 것들에는 바람이 있다 (마담, 입을 준비가 되었어요)> 에서는 무게와 소리의 매개가 된 -버려지고, 떨어지고, 가볍고, 미미한- 사물들의 실체가 가동되는 단서를 엿볼 수 있다.
김온의 작품들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물질적인 동시에 비물질적이다.
이는 마치 기울어진 세상의 균형을 잡으려는 작은 제스처처럼, 무형의 것을 유형으로 만들고자 하는 그의 예술적 탐구의 일환이다. 소리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의 작품 속에서는 중력의 언어를 통해 가시화되며, 관객의 상상 속에서 점차 그려져 간다. 이 전시의 조형적 요소들은 소리의 ‘면’이 되는 지점을 탐구하고, 중력과 볼륨이 결합하여 형상을 이룰 때의 무게감을 드러낸다. 우리는 그가 설치한 작품들을 통해 소리가 단지 귀로 듣는 경험을 넘어, 공간 속에 배어 있는 ‘존재감’을 체험할 수 있다. 소리가 공기 중에 진동할 때, 그것은 특정한 형체와 질감을 가진다. 김온의 작업에서 소리는 공간에 유영하는 유령이 아니며, 관객의 시각적, 신체적 상호작용을 통해 더불어 형상을 얻는다. 소리는 중력에 의해 접히고 공간에 직조되는 형태를 획득하고, 우리는 그 형상화를 통해 일종의 ‘무형의 조각'을 마주하게 된다.
김온의 세계에서 소리란 단순한 진동이 아니다. 청취의 대상을 넘어 그것은 세계의 미세한 구조, 중력과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형상을 얻고 사라지는 순환되는 형태이며, 또 한편으로는 관객이 스스로의 인식을 통해 완성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조각'이다.
김온 개인전
2024년 11월 8일(금) - 11월 30일(토)
시각과 청각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물질과 비물질, 볼륨과 무게 사이의 긴장감과 포용을 ‘소리 표면 덩어리’로 구현
귀로 듣는 소리의 경험을 넘어, 공간 속 소리의 ‘존재감’을 체험
소리의 역학을 점, 선, 면이라는 시각적 언어로 해석
소리를 시간과 함께 움직이며 변화하는 대상으로 상정, 변화의 과정을 나타낸 오브제로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소리 표면 덩어리’로 구축
작가 김온의 세계에서 소리는 청취의 대상을 넘어 세계의 구조(중력과 공간) 사이에서 끊임없이 형상을 얻고 사라지는 순환의 형태를 가진 ‘보이지 않는 조각’으로 진화
김온(b.1971, 서울 출생)은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 회화과, 프랑스 낭트 미술학교 순수미술과, 파리8대학 조형예술학과, 스트라스부르 고등 장식미술학교(현 Haut école des arts du Rhin) Object-Book학과에서 석사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Sound로 포스트디플롬 연구과정을 거쳤다.
주요 전시로는 개인전 《PhonicAphonic》(갤러리조선, 서울, 2020)과 단체전 《공동의 감각》(대전시립미술관, 대전, 2024), 《내밀한 추동》(SeMA창고, 서울, 2022), 《사랑을 위한 준비운동》(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서울, 2021), 《Volume vs Volume》(김온홍승혜 이인전, 드로잉룸, 서울, 2020)을 비롯한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하였다. 음악가 및 문학작가와 협업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하며, 대구예술발전소(2020), 청주 창작스튜디오(2013), 인천아트플랫폼(2009)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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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을 접고, 소리를 엮다”:
무형의 소리를 따라 형태에 이르기까지 / 글 예목준
“La neige ne monte pas
mais, prenant son élan,
descend, et puis se pose.
Jamais elle ne monta.(…)”
<Microgramme 119>, Robert Walser
"눈은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나, 힘을 모아 내려앉고,
자리 잡고 멈춘다
결코 그것은 올라간 적이 없다.(…)"
<마이크로그램 119>, 로베르트 발저
‘세상에 소리가 없다면, 무게도 없을 것이다. 소리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단순한 파동이 아니다. 그것은 중력을 지니고, 무게를 가지고, 형상을 드러내며, 시각적 경계에 닿는 실체로 다가온다.’ 소리가 단지 물리적 현상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의 형태로 태어날 수 있음을 탐구하는 자리를 김온의 전시 《Folding Gravity, Weaving Sound》에서 발견할 수 있다. Folding Gravity, Weaving Sound는 말 그대로 소리의 지각을 ‘뒤집고’, 청각의 ‘구조’를 새로이 구성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무언가를 귀로 듣고 그것이 시각적 형상으로 ‘보이는’ 경험, 나아가 그것이 물질화되어 공간에 서는 과정을 이 전시는 단순히 소리를 물질로 변환하려는 예술적 시도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는 소리, 즉 보이지 않는 진동과 무형의 흔적을 물질적 대화로 끌어내려는 시선이 숨어 있다.
소리를 통해 형상을 그리는 작업은 김온 작가가 “소리내어 읽기”라는 행위에 집중하면서 얻은 통찰에서 비롯되었다. 시간과 함께 움직이며 변화하는 소리의 발화는 고정된 대상이 아닌, 시간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진화하는 유동적인 형상으로 나타나며, 이 과정의 발단으로 작가는 표면에 중력의 무게를 드리운 프린트 페이퍼 작업, 앰비언트 사운드 작업, 벽 공간을 가로지르는 구리선, 바닥에 놓인 셔틀콕과 솔방울과 같은 오브제를 통해 각각 독립된 작품이면서도, 각 작품들은 서로 관계 맺으면서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소리 표면 덩어리로 띄운다.
《Folding Gravity, Weaving Sound》 전시에는 흔히 보이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소리의 역학을 점, 선, 면이라는 시각적 언어로 번역한다. <Il neige (Robert Walser) 눈 내리다 (로베르트 발저)>, <Il neige, neige (Robert Walser) 눈, 눈 내리다 (로베르트 발저)> 시리즈에서는 접힌 종이를 프레스기에 눌러 납작해질대로 납작해진 종이를 스캔하고 확대함으로써 여백이라는 단순한 공간이 일종의 무게감을 지니도록 만든다. 마스킹 테이프가 선명하게 드러낸 경계는 여백의 시작과 끝을 지정하며, 그 속에 고요한 공간의 깊이를 암시한다. 흡사, 이 여백은 발저의 마지막 순간처럼 “무엇이 되지 못한” 것을 상기시키며, 소리 없이 떠도는 중력의 무게를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장치가 된다. 소리와 중력이, 소리와 부피가 어떻게 서로를 규정하고, 서로를 통해 형상화되는지 그래서 ‘소리’와 ‘형태’의 개념적 구분을 해제하여 그 둘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Parallel Line in the Flatland-Volume 평면세계의 평행선-볼륨> 시리즈에서 보이는 얇은 스틸 와이어의 라인은 평면에서 새로운 차원을 암시하며 아래로 늘어진 포물선은 공간을 가로지른다. 이 선들은 일종의 ‘음파’처럼 보이기도 하며,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소리의 흔적을 그려낸다. 마치 소리의 진동이 공간을 울리고, 이 와이어가 그 파동의 잔상을 표현하는 것처럼, 그의 선은 시간과 공간을 가르는 추상적 경계이자 새로운 차원의 “형태”로 다가온다.
전시장을 채우는 각각의 작품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유기적인 소리 발생 형태의 생태계를 형성한다. 이를 포괄하는 배경 작품은 앰비언트 사운드 워크 <Bus Stop in Mid-Air 공중에 떠있는 버스 정류장>이다. 이 앰비언트 사운드 작업에 임의로 소속된 <Before It Becomes a Sound 소리가 되기 전>, <Shuttlecocks on the Ground 지상의 셔틀콕>, <Pine Cones on the Ground 지상의 솔방울>작품은 서로 느슨하게 배치된 상태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전체적인 의미를 완성한다. <Bus Stop in Mid-Air 공중에 떠있는 버스 정류장>에는 펼쳐진 부채꼴 모양을 갖춘 전시 공간 모퉁이 바닥에서 15도 각도 위로 향한 스피커가 있다. 공간에 메꿔지는 녹음된 소리들– 매미 소리, 주변 사람들의 대화, 공사 장비 소음 –과 함께 창작된 사운드는 일종의 음향적 풍경을 구축한다. 이는 일상의 소음이 마치 실체를 가진 듯 둥둥 떠다니며 공간을 지배하는 감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청각적 사운드가 이처럼 공간을 아우르고 감각적인 힘을 발휘할 때, 시각적 요소를 넘어서 청각적 경험의 확장으로 기능하며 물질과 형태를 통해 순환한다. 벽을 따라 길고 느슨하게 횡단하는 얇은 구리선으로 소리의 흐름을 암시하는 듯한 <Before It Becomes a Sound 소리가 되기 전>는 구리선의 길고 가는 형태의 선들은 보이지 않는 소리의 파동을, 혹은 중력이 만들어내는 곡선을 연상케 한다. 이 설치물은 단순히 공간을 채우기보다 공간을 확장시킨다. 부스 바에 고정된 구리선은 벽과 결합하여 지하의 접지 역할을 상징하며, 청각적 경험의 출발점을 형상화한다. 구리선을 따라 흐르는 전류는 아직 소리로 완성되지 않은 에너지를, 즉 잠재적 소리의 형태를 은유하고 이러한 구조는 소리가 형태를 갖추기 이전, 에너지가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흘러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하는듯 보인다. <Shuttlecocks on the Ground 지상의 셔틀콕>, <Pine Cones on the Ground 지상의 솔방울>은 무심히 놓여있거나 결집된 집단처럼 서로 대비를 이루며 지상으로 떨어지는 숙명을 가진 부드럽고 딱딱한 물질이다. 공간을 감싸는 사운드 작업은 이 두 오브제의 비상/나른함과 쇠퇴/견고 사이에서 소리에 의한 무게를 저울질한다.
<Floating Sound Point: Boom! 부유하는 소리 점: 붐!>에서는 단순한 물질의 배열을 넘어 보이지 않는 소리의 잠재적 형상을 안내한다. 작품은 동전, 형광색연필, 콘테라는 일상적이고 소박한 재료들을 통해 거대한 폭발음—의성어로 표현되는 ‘쾅’—의 이미지 가리키는 도상을 감추고 은유하며 소리의 존재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단면적으로 보자면 미약한 가치를 가지는 10원짜리 동전이 거대한 굉음을 내어 소리의 형상화되는 발상은 그 어딘가에 로베르트 발저의 장난스러운 짖궂음을 떠올려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구리빛을 띤 10원짜리 동전들은 벽 위에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듯 보이나, 각 점들을 연결하면 작가가 벽 위에 그리고 지워버린 폭발음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관객들은 보이지 않는 형상을 유추해낼 수도 있다. 이는 마치 무질서 속에서도 조화로운 패턴을 지니는 마치 별자리의 배치처럼 자연의 법칙과 닮아 있다. ‘점’에서 시작해 ‘면’으로 확장되는 소리의 굉음의 감춰진 형상은 우리가 별자리의 각 점을 연결하여 보이지 않는 면적을 지각하고 형상을 떠올리는 이치와 맞닿아 있다. <Papers Tune 페이퍼 튠> 작품에서는 다양한 종이를 쌓아 올려 한번에 스캔된 이미지를 통해 시각화된 소리의 조율을 가늠해 볼 수 있으면서 동시에 마치 모튼 펠드먼 (Morton Feldman)의 음악을 응축하여 묶어낸 덩어리를 연상하게 한다. 작가에 의해 고이 컬렉션된 나무젓가락 종이 커버 부분, 담배 종이를 보호하는 얇은 종이로 재배열된 <There Is Wind for Everything that Falls (Madam, prêt à porter) 하강하는 모든 것들에는 바람이 있다 (마담, 입을 준비가 되었어요)> 에서는 무게와 소리의 매개가 된 -버려지고, 떨어지고, 가볍고, 미미한- 사물들의 실체가 가동되는 단서를 엿볼 수 있다.
김온의 작품들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물질적인 동시에 비물질적이다.
이는 마치 기울어진 세상의 균형을 잡으려는 작은 제스처처럼, 무형의 것을 유형으로 만들고자 하는 그의 예술적 탐구의 일환이다. 소리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의 작품 속에서는 중력의 언어를 통해 가시화되며, 관객의 상상 속에서 점차 그려져 간다. 이 전시의 조형적 요소들은 소리의 ‘면’이 되는 지점을 탐구하고, 중력과 볼륨이 결합하여 형상을 이룰 때의 무게감을 드러낸다. 우리는 그가 설치한 작품들을 통해 소리가 단지 귀로 듣는 경험을 넘어, 공간 속에 배어 있는 ‘존재감’을 체험할 수 있다. 소리가 공기 중에 진동할 때, 그것은 특정한 형체와 질감을 가진다. 김온의 작업에서 소리는 공간에 유영하는 유령이 아니며, 관객의 시각적, 신체적 상호작용을 통해 더불어 형상을 얻는다. 소리는 중력에 의해 접히고 공간에 직조되는 형태를 획득하고, 우리는 그 형상화를 통해 일종의 ‘무형의 조각'을 마주하게 된다.
김온의 세계에서 소리란 단순한 진동이 아니다. 청취의 대상을 넘어 그것은 세계의 미세한 구조, 중력과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형상을 얻고 사라지는 순환되는 형태이며, 또 한편으로는 관객이 스스로의 인식을 통해 완성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조각'이다.
작가 | 김온 |
전시장 | 드로잉룸 (drawingRoom, ドローイングルーム) |
주소 | 03036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7길 68-4, 2층 |
오시는 길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도보 9분 (통인시장 끝에서 왼쪽으로 도보 1분, 영화루 맞은편 골목) |
기간 | 2024.11.08(금) - 30(토) |
관람시간 | 11:00 - 18:00 |
휴일 | 일요일, 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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