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dograph パドグラフ 파도그래프

작은 빛

김희수아트센터

2024.06.08(토) - 07.27(토)

MAP
SHARE
Facebook share button
Image 3233
내용: 각자의 궤도를 돌고 돌다가, 서로 다시 만나는 곳에서

🔮 시인 김혜순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불편한 것을 견디는 것은 (작가가) 자신의 얼굴을 대면하는 것(김혜순, 김용준, "어느 시간의 맥박들”, axt, 25호, 2019, p.43) 이라고. 예술은 각자의 체화된 세계가 외부로 드러날 수 있을 때까지 자신만의 언어를 세심하게 고르고 다듬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작업의 구심점은 개인에서 출발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삶에 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방법의 하나이다. 타인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 까닭이다.

《작은 빛》은 수림문화재단을 설립한 동교 김희수 선생의 뜻을 기리는 동시에, 재단 창립 15주년을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해 마련한 전시다. 이 자리에는 만남과 작별, 생과 사, 과거와 미래, 기억과 망각, 추념과 축하 등 모든 것이 공존한다. 이번 전시는 수림문화재단이 그간 지나온 길을 토대로, 설립자가 강조했던 가치를 다양한 예술 언어로 보여준다. 참여작가 서성협, 서인혜, 지희킴, 현우민의 작업은 개인적 경험을 사회적으로 확장하고 우리에게 새로운 사유를 위한 질문을 던지며 각자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그리고, 최영은 설립자의 삶과 철학을 소설로 조망하고 현재와 연결하여,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작업 구조를 보여준다. 미시적 접근을 통해 리얼리티를 다루는 미시사 연구에 가까운 태도를 보여주는 이들의 작품에서, 우리는 지난 시간에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김희수 선생을 추억하고 수림문화재단의 발자취를 더듬기 위한 시도에서 출발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질문하기 위한 자리이다.

✨서성협은 다문화 가정을 바라보는 편견과 시선에서 출발하여, 절대적으로 순수한 상태에 의문을 제기한다. 작가는 단일한 정체성으로 범주화된 세계에서, 정제되지 않은 다양한 형태가 뒤섞이며 존재 가능한 ‘혼종’의 개념을 긍정하고, 설치, 사운드,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로 위계질서를 재배치한다. 그의 작업은 동양과 서양, 신성과 세속, 전통과 현대, 장식 오브제와 실용 악기 등 이분법적으로 대립한 경계를 해체하여, 우리에게 관성에서 벗어나 세계를 인식하기를 제안한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에 있는 방파제 ‘테트라포드’ 형상의 설치 작업은 라탄과 가죽을 재료로 사용하여 신축성과 견고함의 물성을 드러내면서, 사운드를 통해 다양한 감각을 동시에 제시한다.(<껍데기의 기념비>(2024)) 얼기설기 엮인 라탄 프레임 틈새로 삐져나온 비정형의 형체는 안팎으로 복잡하게 얽힌 ‘정체성’을 입체적으로 담아낸다.(〈free-form frame: 포섭〉, 〈free-form frame: 위장〉, 〈free-form frame: 분열〉(2024)) 원기둥 좌대 위 오브제는 기존 작업에서 바깥을 향했던 나무에 먹을 칠한 면을 이번에는 안쪽으로 위치를 바꾸어, 고정된 상태의 가변 가능성을 드러낸다.(<위상경계: 안과 밖>, <위상경계: 밖과 안>(2024))

✨서인혜는 탈중심적이고 미시적인 세계에 주목하여 영상, 설치, 드로잉 등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개인적 서사와 정서에서 출발한 작업은 작가가 수집한 다양한 이야기와 이미지를 중첩하고 재배치하여, 불완전한 조각들 사이를 새로운 언어로 잇는 과정을 시도한다. <희수의 비디오 카셋트>(2024)는 김희수 선생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개인적 생애를 담았다. 이 영상작품은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김희수 선생이 생전에 기억/기록하고 싶어 했을 것을 작가가 상상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작가의 전작 소재였던 외할머니가 재등장하고, 윤동주의 <자화상>에 김희수 선생의 조국을 향한 그리움을 투영하는 등, 작가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지난 시간을 재서술하며 리얼리티를 재구성했다. 가난하고 고된 유년 시절은 풀뿌리와 나무껍질(초근목피) 형상의 설치 작업으로 재현되었다. 사랑의 신호로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반딧불이의 작고 동그란 신호는 김희수 선생의 움직임을 따라, 한국에서 일본으로, 또다시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동하며 수많은 존재들을 만난다. 이 긴 여정은 아날로그적 사랑의 신호에서 출발하여 오늘날 디지털 블루투스 신호로 연결되고, 그가 어둠 속에서 꿈꿨던 아름다운 나무와 숲(수림문화재단의 '수림'은 김희수 선생 이름의 '수'와 이재림 여사 이름의 '림'을 따와 만들었다.)의 이야기로 비로소 완성된다.


✨지희킴은 사회·역사적 맥락에서 권력의 기호로서 작동하는 몸, 언어 등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미지를 해체하는 방식으로 재맥락화를 시도한다. 특히 드로잉의 과감한 제스처는 우연성과 즉흥성을 부여하여 작가가 다루는 대상의 관습적 규칙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서사를 구축한다. <심연의 정원>(2022~2024)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몸에서 벗어나, 고정되지 않은 형태의 신체를 가진 식물에 주목하여 표현한 시리즈이다. 작가는 대상을 사실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다양한 외양과 감정을 가진 유연한 객체로 표현했다. <북 드로잉 프로젝트>(2011~ongoing)는 작가가 영국 체류 당시 수집한 책에 드로잉을 그린 시리즈이다. 영어책은 형형색색의 드로잉으로 뒤덮여, 활자의 일부 문장은 지워지고 끊어졌다. 작가의 행위는 이미 견고하게 완성된, 오래된 역사에 틈입하여 낡은 관념을 무화시키려는 시도이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는 <드로잉의 정원>은 작가가 영국, 타이완, 일본 등에서 드로잉을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했던 기록을 공유하며, 서울의 시민들과 확장하는 드로잉 워크숍이다.

✨최영은 소설의 가능성을 확장하여 문학 외 다양한 장르와 협업을 시도하며 글을 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설립자 김희수 선생의 삶을 다루면서 상상력을 더해 사실과 허구를 결합한 ‘메타픽션(Meta Fiction)’ 「작은 빛」을 집필했다. 프랑스령 기아나 출신의 인턴이 재단에 입사하면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이야기를 통해, 김희수 선생의 삶과 철학을 입체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이 소설은 김희수 선생이 사회의 낮은 곳을 바라보며 중요하게 강조했던 가치를 담고 있다. 《작은 빛》에서 텍스트는 단순히 물성을 가진 책의 형태에서 그치지 않고, 영상과 퍼포먼스 등 시간 기반 예술의 다양한 감각체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소설은 전시장에 설치된 모니터 속 무빙 이미지로 연속 재생되고,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는 낭독 퍼포먼스에서 퍼포머의 발화를 통해 수행성을 가진 매체로 존재한다.

✨현우민은 이주민의 정체성을 소재로 영상과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 제주에서 일본으로 이주하여 타지에 정착했던 조부모의 이야기를 담은 <돌-아-가>(2010)에 이어,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재일한국인 2세 부모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残像旅行 잔상 여행>(2024)을 새롭게 선보인다. 두 세대에 걸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작가의 작업은 개인의 기억과 디아스포라 경험을 직접 마주하면서, 공동의 역사를 어떤 방식으로 감각해야 하는지 질문한다. 작가는 재일한국인 3세로서, 앞선 세대와 달리 트라우마적 역사를 직접 체험하지 못한 ‘비경험 세대’이다. 그는 인터뷰 방식을 통해 당사자의 기억으로 과거에 접근했고, 인터뷰에 등장하는 특정 장소를 현재의 시점에서 촬영한 이미지를 통해 시간의 역순으로 역사를 재구성했다. 개인적 서사를 통해 집단의 근과거 역사를 현재의 시점으로 소환하는 작가의 작업은 김희수 선생 개인의 세계에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시도이다.

-----

태양과 같은 찬란한 빛은 아니더라도,
호롱불 같이 작은 빛으로 사회의 어두운 한구석을 밝히는 사람이 되자.
-동교 김희수

🔮 반딧불이는 꽁무니에서 빛을 내며 한여름의 밤을 밝힌다. 이 작은 움직임은 누군가를 향한 간절함, 기다림, 그리움일 수 있다. 동시에, 예측할 수 없는 가능성의 신호이기도 하다. 어둠을 밝히는 모든 빛이 반드시 크고 휘황찬란할 필요는 없다. 비록 반딧불이의 빛처럼 미약하더라도, 자신의 위치에서 어두운 한구석을 밝힐 수 있다면 작은 빛은 유의미하다. 앞으로 나아갈 길의 방향은 도래할 시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지나온 길의 흔적, 그리고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길 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빛의 다양한 모양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관람객 스스로 어둠 속에서 어떻게 깨어있을 것인지 질문하는 자리이다.

출처

작가서성협, 서인혜, 지희킴, 최영, 현우민
전시장김희수아트센터 (Kim Hee Soo Art Center, キムヒス・アートセンター)
주소
02456
서울 동대문구 홍릉로 118 김희수아트센터
오시는 길지하철6호선 고려대역 3번 출구에서 684m
기간2024.06.08(토) - 07.27(토)
관람시간12:00-18:00
휴일일요일
SNS
    웹사이트

    주변에서 열리는 이벤트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