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05일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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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30(목) - 06.29(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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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5일 후 After 6205 Days

데미안리 개인전
5월 30일 - 6월 29일

날것은 날 것: 이미지가 두른 시간과 공간

순간적으로 만나는 한 이미지는 사실 얇은 겉치레와 같은 낱장이 아니다. 무언가에 시선이 잡히고 그 대상에 매혹되는 순간은 우리에게 일시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순간은 대상인 사물이나 사람, 혹은 무어라고 칭할 수 없는 것들이 시간과 공간을 축적해 온 것과의 만남이다. 만나는 순간은 만나기 전의 시간들을 내재한다. 순간적 만남을 미술 작품으로 담을 때, 작품은 그 순간에 느낀 감각을 소유하고 싶은 태도와 순간에 내포된 과정을 본인의 방식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가 반영된다. 작품 또한 이미지라고 부를 때, 엄밀히 따지면 처음에 작가가 본 이미지와 거리감이 있다. 왜냐하면 작품은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고 물체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본 이미지가 작가의 손을 통해 물성으로 남을 때, 그때 그곳은 번안의 과정을 통해서 늦춰져 작품으로/으로서 나온다.

작가의 내면, 작가가 본 풍경, 작가가 손에 든 붓을 거쳐서 한 이미지가 화면 위에 도착한다. 이 이미지가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이미지가 답한다면, 그는 출처를 기억할까? 역사학자가 된 것처럼, 우리는 스마트폰 폴더에 저장된 사진이나 머릿속에 기록된 풍경에서 이미지의 출처에 접속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찍었는지 추적하는 일도 훨씬 쉬워졌다. 그런데 이미지는 정작 역사학적인 접속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접속은 시공간적 분석을 점으로 생각한다. 그때 그곳이 단단하게 묶여 있다고 간주할 때, 데미안 리의 작품에 들어간 이미지를 보고 다수의 시공간이 화면에 점철되어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주변 풍경, 모티브로 다룬 동물이나 곤충의 표피, 그리고 지나가다 본 옷의 패턴이 이미지로 나올 때, 하나하나에 출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미지가 나아가는 방향은 소급적이기만 하지 않는다. 나타난 것이 하나의 작은 이미지일지라도, 비록 작가가 실제로 보거나 영감을 얻은 만남이 순간적일지라도 거기에는 시간적 과정이 함축되어 있다. 작품으로 나왔을 때 이미지는 각각 번안의 과정을 지나온 시간과 공간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화면 안에서 미래적으로 그려나간다.

데미안 리의 단단한 표면은 표면의 물성뿐만 아니라 이미지에 쌓인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두께로 직조된다. 작가가 순간적이고 얇은 이미지를 모티브로 삼는다고 하더라도, 작품으로 오기/나오기까지 많은 시간과 공간에서 상기되거나 과정을 동반한다. 생각해 보니, 무늬나 패턴은 상하좌우의 구속에서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확장 가능성은 데미안 리의 화면에서 전체에서 조각난 일부가 아닌, 전체와 일부를 구분하지 않고 추구된다. 그의 화면이 물성의 단단함과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두께를 단단함을 가지면서도 날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이미지가 더 넓은 시간과 공간을 향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좌표처럼 그때 그곳에 점으로 머물기만 하지 않는다. 화면 안에 고정되고 안착하긴 하지만, 이미지는 작가가 보고, 경험하고, 느끼고, 붓을 들어 즉흥적으로 그려지는 번안의 과정을 거친다. 더 나아가 화면 안에서 이미지가 중첩되고 여러 개 동시에 있을 때, 이미지들끼리 작품 안에 덩어리처럼 분위기를 만든다. 그리하여 이미지는 다른 상상을 이끌기도 한다. 완성된 이미지 하나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다른 이미지가 숨어 있다. 순간적인 만남에서 출발한 화면은 과거의 시각적이고 체험적인 경험을 기록할 뿐만 아니라 화면까지 오는 과정과 오고 나서 다른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도록 날아오른다.

오늘날 시간도 셀 수 있고 공간 위치도 파악할 수 있으며, 어느 한 지점이 어떻고 어쨌다고 짚어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은 더 깊게, 더 순간적으로, 그리고 더 오래 이미지를 향한다. 이번 개인전 제목 <<6,205일 후>>는 주기매미가 지상으로 모습을 나타내기 전,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지내는 시간을 가리킨다. 지상에서 우리가 만나는 짧은 순간, 순식간의 도약까지 지내온 시간은 셀 수 있다. 그러나 하루가 다음날과 완벽하게 동일하지 않은 것처럼, 지상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한순간에는 많은 하루들이 응축되어 있다. 시간의 축적은 매미가 머물던 지하 시절 못지않게,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겪은 경험을 날개로 둘러 입는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가장도 겉치레도 아니다. 데미안 리의 화면에는 여러 공간에서 여러 시간을 보낸 작가의 시선이 그야말로 새겨져 있다. 여기에는 도약의 이미지도 같이 새겨진다. 새겨진다는 표현에서 날것은 있었던 일의 흔적과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상상을 함께 올려놓는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날것은 날(아갈)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의 한순간을 생각나게 하고, 상상을 동반하여 다른 이미지를 피어나게 한다. 보고 화면에 옮기는 작가의 순간적 기록과 감각은 이미지가 되어 작품 속에서 더 깊이, 더 오래 주시되는 대상이 된다.

서문 | 콘노유키
작가데미안 리
전시장앱앤플로우 (Ebb & Flow, エブアンドフロー)
주소
06017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로46길 30, 지하 1층
오시는 길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 5번출구에서 도보 5분
기간2024.05.30(목) - 06.29(토)
관람시간14:00 - 19:00
휴일일요일, 월요일 및 공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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