웁쓰양 개인전 《누가 루시를 울렸나》
현대 사회를 유쾌히 파고드는 참여형 퍼포먼스 ‘멍때리기 대회’로 대중적 명성을 얻어온 웁쓰양은 회화를 통해 그 이면을 드러내 왔다. 2008년부터 회화를 통해 내면의 지층을 그려온 작가는 여섯 번째 개인전 《누가 루시를 울렸나》에서 눈물의 여정과 창조의 역사를 표현한다.
타이틀의 ‘루시’는 에티오피아 하다르 계곡에서 발견된 최초의 여성 인류 이다. 318만 년 전 직립보행을 했다는 이 원시 인류는 〈최초의 눈물〉에서 검푸른 세계와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인류가 불을 발견하기 이전, 호수와 바다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은 가장 빛나는 것이었으며, 생존 불안의 눈물은 그 일부였을 것이다.
〈우는 여자〉 시리즈는 먼 과거의 유산으로서의 ‘눈물’을 우리가 여전히 지니고 있음을, 세계를 다루기에 우리가 여전히 나약하며 도사린 위험 속에 살아감을 알게 한다. 불안은 인류의 생존 역사와 함께 진행되었으며, 다양한 불안 장애의 모습으로 진화했다. 공황 장애에 시달려온 작가는, 루시가 등에 지녔던 감정을 공유하는 〈우는 여자〉 시리즈를 통해 우리의 비밀스러운 뒷모습을 표현한다. 인물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은 구슬 같은 손톱을 지닌 손가락 사이에서 흐른다. 전작에서 눈을 기이하게 강조하던 반면, 신작에서는 인물의 얼굴을 감추었다. 배경도 장소의 특정성을 삭제한다. 이는 얼굴 뒤의 감정적 레이어와 불안의 익명성을 강조한다. 〈어둠 속의 춤〉에서는 자기 얼굴을 가리고 사는 현대인이 사적 공간에서 홀가분한 몸을 가지고 노는 장면을 노출한다. 신체의 양 끝을 하늘로 향해 치켜 모은 모양은 여성기의 형태로도 보인다. 이러한 일상의 장면은 처절하면서 하찮고 반면 즐겁게도 느껴진다. 작가는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생존 능력이 하나씩은 있다고 생각한다. (…) 회피가 나를 생존하게 한다. 그리고 해피하게 한다 ”고 말한 바 있다. 작가에게 그림 그리기 역시 회피와 해피 사이에 발생하는 움직임이다. 무심히 머리맡에 앉은 고양이의 눈은 대수롭지 않게 불안을 튕겨낸다. 고양이의 눈에는 빛을 조절하며 튕겨내는 반사판이 있는데, 빛은 두 배의 밝기가 되어 나온다고 한다. 고양이는 옷 한 점 걸치고 있지 않은데도 현대인이 동경하는 ‘chill’ 한 태도로 삶을 일관한다. 이는 타인의 문법을 신경 쓰지 않는 듯 스스럼없는 웁쓰양의 표현 방식과 닮아있다. 회피와 해피 사이에 위치한 자기 응시는 관객을 표적으로 반사되고 불꽃이 되어 타오른다.
웁쓰양의 회화에서 불안은 ‘해피’로 대변되는 고양된 흥분을 내포한다. 〈황금 분수〉에서 시원하게 솟아오르는 물줄기는 석양빛에 가려 소변인지 스쿼팅(squirting, 여성 사정)인지 생식기에서 분출되는 눈물인지 알 수 없다. 해소와 창조 사이의 환상적 분출은 루시가 흘린 눈물처럼 세계의 물결이 된다.
감정적 이방인으로서의 자아는 판타지적 인물 이미지를 만든다. ‘비참한(wretched)’이라는 말은 이방인(alien, 에일리언)을 가리키는 wertch라는 말에서 왔다 고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에일리언이 된 현대인은 내면에 불순물을 쌓아간다. 진주는 조개의 피부층에 이물질이 쌓이며 만들어지는 광물이다. 〈최후의 눈물〉에서, 진주를 흘리고 있는 여자가 등 진 산 너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진주는 맑은 웅덩이가 되고, 〈신의 휴식〉에 다다라 바다가 된다. 고양이가 쓰러진 배 위에 재처럼 앉아 시선을 흐트러트린다. 새빨갛게 타오른 여자는 파도에 손을 담그고 몸을 식힌다. 기원전부터 흘려온 눈물과 여전히 이어져 있다는 듯이.
글 조혜수 (독립기획자, 연구자)
현대 사회를 유쾌히 파고드는 참여형 퍼포먼스 ‘멍때리기 대회’로 대중적 명성을 얻어온 웁쓰양은 회화를 통해 그 이면을 드러내 왔다. 2008년부터 회화를 통해 내면의 지층을 그려온 작가는 여섯 번째 개인전 《누가 루시를 울렸나》에서 눈물의 여정과 창조의 역사를 표현한다.
타이틀의 ‘루시’는 에티오피아 하다르 계곡에서 발견된 최초의 여성 인류 이다. 318만 년 전 직립보행을 했다는 이 원시 인류는 〈최초의 눈물〉에서 검푸른 세계와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인류가 불을 발견하기 이전, 호수와 바다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은 가장 빛나는 것이었으며, 생존 불안의 눈물은 그 일부였을 것이다.
〈우는 여자〉 시리즈는 먼 과거의 유산으로서의 ‘눈물’을 우리가 여전히 지니고 있음을, 세계를 다루기에 우리가 여전히 나약하며 도사린 위험 속에 살아감을 알게 한다. 불안은 인류의 생존 역사와 함께 진행되었으며, 다양한 불안 장애의 모습으로 진화했다. 공황 장애에 시달려온 작가는, 루시가 등에 지녔던 감정을 공유하는 〈우는 여자〉 시리즈를 통해 우리의 비밀스러운 뒷모습을 표현한다. 인물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은 구슬 같은 손톱을 지닌 손가락 사이에서 흐른다. 전작에서 눈을 기이하게 강조하던 반면, 신작에서는 인물의 얼굴을 감추었다. 배경도 장소의 특정성을 삭제한다. 이는 얼굴 뒤의 감정적 레이어와 불안의 익명성을 강조한다. 〈어둠 속의 춤〉에서는 자기 얼굴을 가리고 사는 현대인이 사적 공간에서 홀가분한 몸을 가지고 노는 장면을 노출한다. 신체의 양 끝을 하늘로 향해 치켜 모은 모양은 여성기의 형태로도 보인다. 이러한 일상의 장면은 처절하면서 하찮고 반면 즐겁게도 느껴진다. 작가는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생존 능력이 하나씩은 있다고 생각한다. (…) 회피가 나를 생존하게 한다. 그리고 해피하게 한다 ”고 말한 바 있다. 작가에게 그림 그리기 역시 회피와 해피 사이에 발생하는 움직임이다. 무심히 머리맡에 앉은 고양이의 눈은 대수롭지 않게 불안을 튕겨낸다. 고양이의 눈에는 빛을 조절하며 튕겨내는 반사판이 있는데, 빛은 두 배의 밝기가 되어 나온다고 한다. 고양이는 옷 한 점 걸치고 있지 않은데도 현대인이 동경하는 ‘chill’ 한 태도로 삶을 일관한다. 이는 타인의 문법을 신경 쓰지 않는 듯 스스럼없는 웁쓰양의 표현 방식과 닮아있다. 회피와 해피 사이에 위치한 자기 응시는 관객을 표적으로 반사되고 불꽃이 되어 타오른다.
웁쓰양의 회화에서 불안은 ‘해피’로 대변되는 고양된 흥분을 내포한다. 〈황금 분수〉에서 시원하게 솟아오르는 물줄기는 석양빛에 가려 소변인지 스쿼팅(squirting, 여성 사정)인지 생식기에서 분출되는 눈물인지 알 수 없다. 해소와 창조 사이의 환상적 분출은 루시가 흘린 눈물처럼 세계의 물결이 된다.
감정적 이방인으로서의 자아는 판타지적 인물 이미지를 만든다. ‘비참한(wretched)’이라는 말은 이방인(alien, 에일리언)을 가리키는 wertch라는 말에서 왔다 고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에일리언이 된 현대인은 내면에 불순물을 쌓아간다. 진주는 조개의 피부층에 이물질이 쌓이며 만들어지는 광물이다. 〈최후의 눈물〉에서, 진주를 흘리고 있는 여자가 등 진 산 너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진주는 맑은 웅덩이가 되고, 〈신의 휴식〉에 다다라 바다가 된다. 고양이가 쓰러진 배 위에 재처럼 앉아 시선을 흐트러트린다. 새빨갛게 타오른 여자는 파도에 손을 담그고 몸을 식힌다. 기원전부터 흘려온 눈물과 여전히 이어져 있다는 듯이.
글 조혜수 (독립기획자, 연구자)
| 작가 | 웁쓰양 |
| 전시장 | 드로잉룸 (drawingRoom, ドローイングルーム) |
| 주소 | 03036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7길 68-4, 2층 |
| 오시는 길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도보 9분 (통인시장 끝에서 왼쪽으로 도보 1분, 영화루 맞은편 골목) |
| 기간 | 2025.03.19(수) - 04.05(토) |
| 관람시간 | 11:00 - 18:00 |
| 휴일 | 일요일, 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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