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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ery middle

상히읗

2024.10.02(수) - 19(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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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히읗은 오는 10월 2일부터 19일까지 이유진 기획의 박은진, 신동민, 송지유 3인전 《the very middle》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무의식과 같은 비가시적 영역에서 비롯된 감각을 시각 언어로 전환하고자 하는 세 작가가 공유하는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가장자리가 서로 맞닿는 지점을 살피고자 합니다.

오프닝 리셉션은 10월 2일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진행되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sangheeut is pleased to announce “the very middle,” a group exhibition by Eunjin Park, Dongmin Shin, and Jiu Song, curated by Yoojin Lee and running from October 2 to 19. This exhibition explores the shared narrative of three artist who aim to translate sensations from invisible realms, such as the unconscious, into visual language, while examining the points where their practice meet and overlap.

Please join us for our opening reception on October 2, from 5 to 8pm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표면적으로는 아무 변화도 없는, 이렇게 텅 빈 페이지에서 모든 것은 움직인다. 결국 모든 게 울퉁불퉁한 이 세상의 표면에서 움직이지만 세상을 전혀 변화시키지 않듯이.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이 종이처럼 동일한 물질이 세상에 확장되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확장은 여러 형태와 밀도 그리고 다양한 농담의 색깔로 수축되고 응축되지만 그래도 편평한 표면 위에 덧칠해진 모습으로, 또 털이나 깃털투성이 덩어리, 혹은 거북이 껍질처럼 마디투성이 덩어리로도 형상화될 수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털 덩어리, 깃털 덩어리, 마디 덩어리들은 종종 움직이는 듯 보이기도 한다. 혹은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균일한 물질들이 주변으로 확장될 때 다양한 특성들이 부여되면서 그들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이탈로 칼비노, 『존재하지 않는 기사』, 이현경 옮김, 민음사, 2014, pp.128-129.

박은진, 신동민, 송지유의 세상은 마치 낱장의 종이로 이루어진 듯하다. 한쪽 면을 눌러 생기는 흔적이 반대편에서 고스란히 감지되는 세계. 이들은 일상의 작은 요철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발 디딘 표면에 기꺼이 납작 엎드린다. 한편, 미지의 대상으로부터 우연히 수신한 메시지는 대개 예사롭다. 가령 산책길에서 마주한 개미 떼, 허공에 어렴풋이 울려 퍼진 메아리, 신체가 들어 찬 방의 올록볼록한 벽지 무늬, 보편의 허상인 꿈 등이 그것이다. 주지할 점은 가벼운 스침과 긴장에 불과할 사건들이 이들에게만큼은 아름답거나 고통스러운 마찰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이에 강박스러울 정도로 대상을 더듬고 곱씹으며 자신과의 관계를 설정하여 형상화한다. 전시는 세 작가가 바라보는 풍경이 각자의 언어로 전용된 결과물, 고민과 농담, 그리고 사유의 흔적들을 엿보고자 한다.

박은진에게 이미지는 미세한 고저에 의거한 것이자 신체를 통해 촉각적으로 해석되는 영역이다. 눈, 코, 귀, 입, 피부 등으로부터 수용한 감각은 몸이라는 매개물을 거치며 추상적 형태로 시각화된다. 반사적으로 되새김질한 대상이 점차 왜곡되고 편집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형은 작가에게 일종의 쾌로 작동한다. 그는 원본의 물성과 관계없는 새로운 질감의 표면을 구축하는 반면, 동시에 그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화면에 가하는 붓질의 속도와 물감의 농도에 따라 불규칙하게 흩어지는 모래 알갱이, 방향성이 모호하게 나 있는 울퉁불퉁한 선들은 우연성을 배가시키며 자유로운 상상이 침투할 공간을 형성한다.

신동민의 작업은 주로 트랜스(trance) 상태에서 진행된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트랜스란 최면 및 히스테리 상황에서 외계와의 접촉을 끊고 깊은 명상에 들어가 특수한 희열에 잠기는 것이다. 이는 주로 특정 영역에 확고한 주의를 가함으로써 일어나는 변형된 초월적 의식 상태를 말한다. 몰입을 제하는 감정을 덜어내고 원초적 감각에 집중하는 것. 작가는 종종 그가 존재하기 이전의 시간을 떠올린다. 그리고는 캄캄한 동굴 벽을 더듬어 양각을 새긴 선대인과 같이 본능적 필력에 의지해 그가 추적한 대상을 기록한다. 요컨대 종이와 목탄은 순간의 필치를 오롯이 흡수함으로써 행위자의 움직임을 직관적으로 제시하며, 우리는 화면 앞에서 그리기의 역사에 천착한 작가의 시각적 전언과 마주하게 된다.

송지유의 세상에서 모든 것은 탈락하지 않는다. 그는 주변을 둘러싼 어리숙한 모양들의 생김새를 톺아보며 그것이 임시로 안착할 수 있는 지지체의 형태를 고안한다. 그에게 정형화된 프레임은 미완의 것이자 탈피해야 할 관습이다. 고로 작가는 본체에서 파생된 부분에 온전한 객체성을 부여하기 시작한다. 예컨대 오려진 캔버스 천 조각과 구멍 뚫린 캔버스, 몇 년간 쌓아 올린 물감층의 표피를 떠낸 반투명한 껍질 등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꼭 플라나리아처럼. 각각의 개체는 그저 네모반듯하지 않은 세상의 균형을 조절하는 추와도 같기에 우리는 그들이 원래 하나였는지 한 쌍이었는지, 딱딱했는지 부드러웠는지 질문할 필요가 없다.

명료한 언어로 설명하기 힘든 감각을 표현하고 설득하는 것은 비단 쉽지 않다. 그럼에도 박은진, 신동민, 송지유는 저마다의 내면 또는 평행 세계, 나아가 해묵은 과거로의 여정을 덤덤히 이어 간다. 본디 감각기관은 내외적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데 관여하고 생명 유지에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지속적인 자극에 대한 항상성을 기르게 하며 평형 상태를 유도하는 것이다. 저들이 낱장의 종이와도 같은 세상 한 가운데서 안팎으로 팽창하고 수축하는 움직임을 모조리 겪어야 한다면, 그러한 마찰을 동력 삼아 우리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기를 바라 본다.

글: 이유진
작가박은진, 신동민, 송지유
전시장상히읗 (sangheeut, サンヒーウッ)
주소
04339
서울 용산구 신흥로 30 지하 02호
오시는 길6호선 녹사평역 2번 출구에서 610m
기간2024.10.02(수) - 19(토)
관람시간11:00-18:00
휴일일요일, 월요일, 공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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