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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툭한 창으로 배꼽을 찌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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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3(일) - 18(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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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툭한 창으로 배꼽을 찌르기
정예진 개인전

2024.10.13(일) - 2024.10.18(금)
매일 14:00 - 19:00
10.13 18:00 오프닝 리셉션
강남구 신사동 643-17 지하1층

서문 | 콘노유키
사진 | 양이언

전시 및 구매 문의 | 디렉터 최유선([email protected])

가지고 온 것들이 누락된 것을 가지고 올 (힘을 갖게 될) 때

어느 단편을 손에 쥐고 우리는 그 대상의 온전한 모습을 떠올리다 잠시, 그 단편(fragments)에 끌린 이유를 뒤늦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것이 왜 여기에 있는지, 왜 나도 모르게 매료되었는지—그럴 때마다 관심의 비중은 전자에서 점점 후자로 옮기게 된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 형태가 언제, 그 대상의 위치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정확히 아는 일은 매료된 지금 시점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주인의 곁에서, 원래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면, 나한테 그 단편은 도달하지도 관심을 끌 일도 애초에 없었기 때문이다.

유추를 통해서 우리는 단편화한 대상에 본래 모습을 담기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편은 그 대상의 내력에서 벗어난 시선을 허용해 준다. 단편은 생산지와 본래 형태, 이 대상을 소유하던 주인을 떠나, 다른 시공간(에 놓여 있게 됨)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개인전 《뭉툭한 창으로 배꼽을 찌르기》에서 정예진이 다루는 소재는 이런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누락되거나 탈락된 사물과 이미지, 이야기들”은 정예진이라는 한 사람을 통해서 시각적으로 풀이된다. 작가는 이 방식을 “구제”라고 표현하여 설명하는데, 무엇으로부터 구제된 것으로 작품에 나타날까?

작가가 길가에서 주워 온 물건, 본인이 가지고 있던 사진 이미지,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과거의 한 장면, 이를 붓으로 옮긴 그림, 석고나 레진을 재료로 작업하여 작품을 이룬다. 누락되거나 탈락된 사물과 이미지, 이야기들은 정예진의 작업에서 원래 모습으로 회복되어 나타나지 않는데, 오히려 이 단편 바깥에서 보낸 시선을 통해서 그 시선, 즉 내가 단편들에 보낸 시선을 파악하게 된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구제란 작가의 내면이 시선으로 투영되어 어떤 대상에 힘을 부여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정예진에게 구제는 투사된 내면을 시각적으로 보고 내가 나를 받아들이는—이해하고 치유 받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 구제는 아예 처음의 시점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태도가 아니다.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대신, 작품은 균열이 생기고 형태가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게)서 새로운 이미지와 이야기가 도래하길 바란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정예진의 작업에서 구제는 과거를 향하는 동시에 새로움을 향하는 시선이 만나면서 이루어진다. ‘누락된 것’은 오히려 물건들의 본래 모습이 아니라 그 대상을 둘러싼 다양한 감각들이다. 어떤 대상을 보고 연상된 기억들, 어느 주인의 손을 떠난 물건이 환기시킨 나의 추억들은 소유자와 소재지를 떠나서도 나와 접촉면을 만들 수 있다.

말로는 담아둔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기억이나 빠져나간 이야기를 담는 그릇은 애당초 얼마나 튼튼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본다. 그것은 틀이라기에는 연약하고, 순간적이다. 흩어지기 쉽고 깨지기 쉬운, 잊혀지기 쉬운 것들은 견고한 틀에 담아 온전히 보관되는 것이 아니라 연약함과 순간성 그 안에 제 모습을 출현시키는 것이 아닐까. 작가가 기성품을 비롯하여 사진, 물감을 비롯한 다양한 소재를 아우르면서 작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누락된 물건들을 가지고 와서 누락된 이미지와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일은 수평적이고 연쇄적이다.

누락된 것들—사물, 이미지, 이야기는 그 만남과 조합 안에서 형태 지어진다. 이것들은 모두 과거라는 위치에서 불러 세워지지 않는다. 정예진의 시선이 사물을 만나거나, 이미지가 사물에 맺히거나, 이야기를 끄집어낼 때, 누락된 것들은 과거 대신 지금이라는 시제에 공감각적으로 윤곽 지어진다. 단편들은 환기라는 만남과 조합의 과정을 통해서 잊혀진 것들을 형태(작품)로 응집한다. 소재로 가지고 온 것들은 출처도 매체도 각기 다르지만, 누락된 것을 가지고 올 힘을 제 안에—작품에 갖게 된다.

서문 | 콘노유키
작가정예진
전시장앱앤플로우 (Ebb & Flow, エブアンドフロー)
주소
06017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로46길 30, 지하 1층
오시는 길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 5번출구에서 도보 5분
기간2024.10.13(일) - 18(금)
관람시간14:00 -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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