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상근 표류기 2023 : 새, 카트, 기후
호상근 작가는 일상 중 혹은 어디론가 이동하며 포착한, 익숙하면서도 낯선 장면을 사진으로 찍고 종이와 색연필로 기록한다. 기록의 용이성을 위해 선택한 종이와 색연필은 호상근 작가의 작업을 특징짓는 도구인데, 이들은 사소하거나 별 것 아닌 순간으로부터 발견한 의미 있는 지점을 때로는 즉흥적으로, 때로는 섬세하게 담을 수 있게 하는 재료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간 ‘그림 그리기’를 통해 타인의 이야기를 듣거나, 관찰자로 살아가며 자신이 본 바를 말하며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해왔다. 그가 10여 년째 지속하고 있는 프로젝트인 <호상근 재현소>가 타인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세상에 대해 열린 자세를 유지하는 방법이라면, 본업인 그림 그리기는 ‘말하는’ 행위로, 그가 표류하듯 살고 이동하며 관찰한 것, 우연히 발견한 것들을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는 방식인 셈이다.
5년만의 국내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는 처음으로 시도하는 A0 사이즈의 대형 색연필 작품 4점을 비롯해, 다양한 크기의 화면 안에 작가가 베를린에서 자주 만나는 장면들을 더욱 정교하고 세밀한 묘사로 그려낸 작품들을 선보인다. 국내에서의 작업들이 대체로 한국의 문화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인간과 삶에 대한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해학과 공감의 지점을 기록하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면, 작가가 2019년부터 독일에 거주하며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근본적으로 겉돌 수 밖에 없는 이방인으로서 경험한 문화충돌, 삶의 생경한 이면, 같은 현상에 대해 유사하거나 혹은 완전히 상이한 태도가 교차하는 지점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적 차이는 작가의 작업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한국에서보다 단순해진 생활패턴으로 작업에 몰두할 수 있게 된 최근 5년간의 작품들에서 디테일과 밀도가 한층 높아지고 스케일이 점차 커지는 것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이번 전시의 제목 <호상근 표류기 2023 : 새, 카트, 기후>는 작가가 2019년 네덜란드 엔스헤데에서 보낸 짧은 레지던시 기간 동안 보고 들은 것들을 모아 엮은 책 『호상근 표류기』에서 파생되었다. 전시제목에서도 그간 변화한 작가의 시각과 작업적 특성을 엿볼 수 있는데, 독일에서의 삶을 ‘표류'로 상정하고 낯선 땅의 표면에서 보편적이며 동시에 이질적인 삶의 순간들을 이미지로 건져 올린 후, 이들을 아직은 알 수 없는 자신의 표류의 목적지를 향한 단서처럼 여기는 것이다. 전시작들의 주요 소재인 도심 속의 ‘새’와 뜬금 없는 곳에 세워져 있는 마트의 ‘카트’, 그리고 에어컨이나 난방시설이 완비되어 있지 않은 유럽 건물의 특징상 ‘기후’ 변화에 나름의 대처법을 찾는 사람들의 행태 등은 국내외 할 것 없이 보편적인 소재이지만 독일이라는 문화 지리적인 특성상 더욱 작가의 눈에 띈 광경들이다. 마치 무작위로 흩어진 이미지들처럼 보이는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 바로 새와 카트, 그리고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사람들 모두 본래의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벗어난 존재들의 모습이라는 점이다. 본래 살던 자연환경에서 벗어나 낯선 도심에 적응하여 살아가고 있는 비둘기/새와 인간의 관계, 철저히 인간의 편의와 뚜렷한 용도로 만들어진 카트가 난데없는 장소에서 발견될 때의 생경함, 기존의 환경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바뀌고 있는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 속에 애써 대응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나고 자란 곳을 떠나 낯선 문화에서 나름 적응하며 표류하고 있는 작가 자신과 닮아 있는 듯도 하다.
호상근이 모두에게 주어진 일상을 몇 걸음 떨어져 바라보며 포착한, 주목받지 못하는 것들 이면에 내재된 완전히 새로운 세계는 흔하지만 낯설고, 사실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거나 혹은 이상한데도 감탄스럽다.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작가는 본능적으로 인간과 삶에 대한 낙관적이고 호기심 어린 시선, 당연해 보여도 결코 가볍지 않은 것들에 대한 경외의 마음을 작업 곳곳에 녹여내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를 기록한다. 새와 카트, 기후로 느슨하게 엮이는 이번 전시작들은 호상근의 여느 전시들이 늘 그랬듯, 특정한 세계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가 건져 올린 ‘단서'들을 보는 이들 각자가 어떻게 사용하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여정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의 표류기가 보는 이들에게 열어줄, 무한히 확장 가능한 내러티브를 이번 전시에서 만나보기를 바란다.
호상근 작가는 일상 중 혹은 어디론가 이동하며 포착한, 익숙하면서도 낯선 장면을 사진으로 찍고 종이와 색연필로 기록한다. 기록의 용이성을 위해 선택한 종이와 색연필은 호상근 작가의 작업을 특징짓는 도구인데, 이들은 사소하거나 별 것 아닌 순간으로부터 발견한 의미 있는 지점을 때로는 즉흥적으로, 때로는 섬세하게 담을 수 있게 하는 재료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간 ‘그림 그리기’를 통해 타인의 이야기를 듣거나, 관찰자로 살아가며 자신이 본 바를 말하며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해왔다. 그가 10여 년째 지속하고 있는 프로젝트인 <호상근 재현소>가 타인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세상에 대해 열린 자세를 유지하는 방법이라면, 본업인 그림 그리기는 ‘말하는’ 행위로, 그가 표류하듯 살고 이동하며 관찰한 것, 우연히 발견한 것들을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는 방식인 셈이다.
5년만의 국내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는 처음으로 시도하는 A0 사이즈의 대형 색연필 작품 4점을 비롯해, 다양한 크기의 화면 안에 작가가 베를린에서 자주 만나는 장면들을 더욱 정교하고 세밀한 묘사로 그려낸 작품들을 선보인다. 국내에서의 작업들이 대체로 한국의 문화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인간과 삶에 대한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해학과 공감의 지점을 기록하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면, 작가가 2019년부터 독일에 거주하며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근본적으로 겉돌 수 밖에 없는 이방인으로서 경험한 문화충돌, 삶의 생경한 이면, 같은 현상에 대해 유사하거나 혹은 완전히 상이한 태도가 교차하는 지점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적 차이는 작가의 작업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한국에서보다 단순해진 생활패턴으로 작업에 몰두할 수 있게 된 최근 5년간의 작품들에서 디테일과 밀도가 한층 높아지고 스케일이 점차 커지는 것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이번 전시의 제목 <호상근 표류기 2023 : 새, 카트, 기후>는 작가가 2019년 네덜란드 엔스헤데에서 보낸 짧은 레지던시 기간 동안 보고 들은 것들을 모아 엮은 책 『호상근 표류기』에서 파생되었다. 전시제목에서도 그간 변화한 작가의 시각과 작업적 특성을 엿볼 수 있는데, 독일에서의 삶을 ‘표류'로 상정하고 낯선 땅의 표면에서 보편적이며 동시에 이질적인 삶의 순간들을 이미지로 건져 올린 후, 이들을 아직은 알 수 없는 자신의 표류의 목적지를 향한 단서처럼 여기는 것이다. 전시작들의 주요 소재인 도심 속의 ‘새’와 뜬금 없는 곳에 세워져 있는 마트의 ‘카트’, 그리고 에어컨이나 난방시설이 완비되어 있지 않은 유럽 건물의 특징상 ‘기후’ 변화에 나름의 대처법을 찾는 사람들의 행태 등은 국내외 할 것 없이 보편적인 소재이지만 독일이라는 문화 지리적인 특성상 더욱 작가의 눈에 띈 광경들이다. 마치 무작위로 흩어진 이미지들처럼 보이는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 바로 새와 카트, 그리고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사람들 모두 본래의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벗어난 존재들의 모습이라는 점이다. 본래 살던 자연환경에서 벗어나 낯선 도심에 적응하여 살아가고 있는 비둘기/새와 인간의 관계, 철저히 인간의 편의와 뚜렷한 용도로 만들어진 카트가 난데없는 장소에서 발견될 때의 생경함, 기존의 환경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바뀌고 있는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 속에 애써 대응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나고 자란 곳을 떠나 낯선 문화에서 나름 적응하며 표류하고 있는 작가 자신과 닮아 있는 듯도 하다.
호상근이 모두에게 주어진 일상을 몇 걸음 떨어져 바라보며 포착한, 주목받지 못하는 것들 이면에 내재된 완전히 새로운 세계는 흔하지만 낯설고, 사실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거나 혹은 이상한데도 감탄스럽다.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작가는 본능적으로 인간과 삶에 대한 낙관적이고 호기심 어린 시선, 당연해 보여도 결코 가볍지 않은 것들에 대한 경외의 마음을 작업 곳곳에 녹여내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를 기록한다. 새와 카트, 기후로 느슨하게 엮이는 이번 전시작들은 호상근의 여느 전시들이 늘 그랬듯, 특정한 세계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가 건져 올린 ‘단서'들을 보는 이들 각자가 어떻게 사용하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여정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의 표류기가 보는 이들에게 열어줄, 무한히 확장 가능한 내러티브를 이번 전시에서 만나보기를 바란다.
작가 | 호상근 |
전시장 | 오에이오에이 (oaoa, オーエイオーエイ) |
주소 | 06204 서울시 강남구 삼성로63길 32-11, 1층 |
오시는 길 | 수인분당선 한티역 2번출구에서 도보 10분 거리 |
기간 | 2023.11.10(금) - 12.23(토) |
관람시간 | 11:00 - 18:00 |
휴일 |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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